, 그대도 그리모어를? 그런 금단의 책을 타인에게 드러내다니…….”


란코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귀여워서 참기가 힘들지만, 귀엽다고 말을 하면 더 부끄러워하겠지. 물론 더 부끄러워하는 모습도 보고 싶다만, 여긴 다른 사람도 있는 카페다. 눈이 많으니 넘어가도록 하자.


나는 상관없어. 너와 함께라면, 나의 새로운 문을 열 수 있을 것 같거든.”

?”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뜬 그녀의 얼굴에서 시선을 조금 내리자 양손으로 꼭 붙잡고 있는 그림 일부가 보였다. ‘상처받은 악희, 내 이름은 브륜…….’ 라는 글자와 함께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란코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머리에는 왕관을 쓰고, 등 뒤에는 검은 날개를 휘날리는 그림은 가히 악희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은 자태였다.

역시 신은 죽었다. 니체의 유명한 말을 곱씹으며 쓰게 웃었다. 있어 보이는 것처럼 흉내만 내는 나와는 달리, 란코는 뭐든 진짜다. 어디서든 주목을 받는 수려한 용모, 팬들을 절로 끌어들이는 청아한 목소리, 스스로의 옷을 디자인 할 정도로 빼어난 그림 실력, 그리고 무엇보다 빛나는 순수함까지. 이렇게 타고난 재능만으로도 타인을 압도하는데 심지어 노력가이기도 하다. 시처럼 아름다운 그녀의 언어도 매일 밤 사전을 보며 공부를 한 결과물이라는 사실은 그녀와 친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정도다.

그래서 다시 한번 외쳐본다. 신은 죽었다. 저렇게 완벽한 사람이 두 발로 걸어 다니는데, 내가 어떻게 신의 존재를 믿을까.


새로운 문…….”


란코가 잠시 내 말을 되새기더니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며 특유의 웃음소리로 화답해주었다. 듣기만 해도 마음이 절로 안정되는 목소리다.


좋다! 때가 되면 그대를 내 약속의 세계에 초대하마!”


손을 펼치는 그녀를 보며 나도 미소를 지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언제나 완전함을 원한다그렇기에 나는, 내가 가지고 싶은 재능을 모두 가진 그녀를 친애하고 또 존경하며 그리고 갈구한다. 내가 그녀에게 완벽함을 배우려는 의미도 있지만, 그녀의 곁에서 언제나 그 완벽함을 보고 듣고 느끼고 싶기에. 나는 항상 그녀의 옆자리에 있기를 원한다.


어디, 보여다오! , 이건 단죄검의 목걸이……!”


나의 모자란 그림 실력을 보고 핀잔을 주기는커녕, 화들짝 놀라며 나의 아이디어를 칭찬해주는 란코의 모습은 실로 지상에 내려온 천사와도 같았다. , 본인은 천사보다는 마왕이나 타천사를 좋아하니 천사 같다고 하면 싫어하려나? 아니면 내가 한 말이라고 좋아해주려나. 갑자기 엄청나게 신경 쓰여서 심란해졌다. 내가 홀로 심각해하자 한참 내 노트를 보던 란코가 나를 향해 조심스레 물었다.


, 아스카. 내가 말을 잘못하기라도……?”


평소의 힘찬 목소리가 아니라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나왔다. 란코가 정말로 당황하거나 했을 때 나오는 진심이 담긴 목소리다. 평소의 란코도 귀엽지만, 이 상태의 란코는 무어라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귀엽다. 나는 표정을 펴고 대답을 건넸다.


안심해도 돼. 란코. 네 입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언어는 내게 있어 축복과도 같은 것이니까. ‘잘못이라는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지.”

……. , 후후후. 역시 이 세계를 구원할 사도로다. , 나와 함께 어둠의 날개를 펼치자!”


금세 기분이 좋아져서 말을 쏟아내는 란코를 보며, 다시금 웃음을 지었다. 란코와 함께 있으면 언제나 미소를 짓게 된다. 학교에서 으레 하고 다니는 형식적인 미소가 아니라,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운 미소가.

아아, 또다시 가슴 속에서 감정이 요동친다. 세계를 냉정히 바라보는 관측자에겐 어울리지 않는 뜨거운 감정이. 두뇌를 멈추게 하며 이성을 무디게 하는, 감정의 극한. 희망보다도 뜨겁고 절망보다도 깊은 것.


란코.”

?”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사랑이다.

 

 

 




제목의 'Endless Possibilities'를 보시면 알겠지만, 신데렐라 극장 애니메이션 13화의 뒷이야기를 아스카의 시선에서 아주 짧게 써 보았습니다. 'Endless Possibilities'는 13화의 제목이죠.

'희망보다 뜨겁고 절망보다도 깊은것'은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에서 모 캐릭터가 하는 대사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상황에 어울릴거 같아 썼습니다.

원래 극장 13화 보고 뽕이 차서 바로 쓰려고 했는데 이런저런 사정과 다크소울 때문에 늦어졌네요.

앞으로도 계속 짧은 아이디어를 이런 식으로 짧은 엽편으로 써서 올릴 예정입니다.





Posted by sah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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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2017년 6월 25일 동네 페스타 어나더 스테이지 첫 출전

「가련한 사랑」호죠 카렌X타케우치P 팬픽 개인지

A5 61p 인쇄본 / 표지 컬러 무광 / 6000원

글 사현 / 표지 일러스트 퓨엔테

※ 인포에 있는 이미지는 웹 업로드용으로 사이즈와 해상도를 줄인 버전입니다.




샘플


아까부터 자꾸 가능할거라고 하는데, 당신이 나에 대해서 뭘 알아? 당신이 아는 건 내 외모와 성격 약간 정도야. 고작 그 정도 가지고 내가 아이돌에 적합하다고 하는 거야?”

다소 큰 소리로 말하지 남자는 조금 놀랜 기색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본 채로 말했다.

물론입니다. 저는 호죠 씨가 꼭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본 호죠 씨는, 아이돌을 동경하며 열심히 땀을 흘리던 사람이었으니까요.”

내가? 땀을 흘렸다고? 열심히? 이 사람은 대체 무얼 본 걸까. 다른 사람이랑 착각하는 건가. 어느 쪽이든 기분 나쁘다. 알지도 못하면서 나를 아는 척 하는게 너무나도 기분 나빴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마. 난 노력 같은 거 한 적 없어. 아이돌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게 전부야. 다른 누군가와 착각했는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노력이라고! 알아? 수술이 성공한 이후로 단 한 번도 노력이라는 걸 해 본 적이 없다고!”

크게 쏘아붙이고 나서야 아차 싶었다. 너무 큰 소리로 화를 내 버렸다. 아픈 부분을 건드렸다고 해도 그는 어제 처음 본 사람이다. 다소 심했다고 생각하며 사과의 말을 생각하는데 그가 목을 긁으며 입을 열었다.





아이돌, 하시겠습니까?”

하지만 그 사람의 말에 고개를 들 수밖에 없었다. 깜짝 놀라서 튕기듯 고개를 들었고, 다시 그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검은 눈동자는 내게 한없이 진지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아이돌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할 준비가 되었냐고.

노력.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단어였는데, 지금은 미묘한 심정이다. 내가 노력을 싫어하게 된 계기가 없어진 셈이니까. 그 사람은 살고자 노력했고, 살아남았다. 그리고 자신을 응원해 준 나를 위해, 내 꿈을 이루어주기 위해 노력했고 이제 나를 맞이하러 왔다.

결국 중요한 건 나의 마음가짐이다. 몇 년 간 노력을 부정하던 내가 노력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가. 노력을 할 수 있겠는가. 노력해서……. 아이돌이 될 마음이 있는가.

나는…….”

. 그 사람. . 노력. 연습. . 희망. 아이돌. 무대. .

……하고 싶어. 아이돌.”

수 년 간 하지 못했던 그 말을, 마침내 꺼냈다.

그곳에는, 분명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을 겁니다.”

나의 프로듀서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やかな色 纏波紋

선명한 색을 휘감은 파문은

風受けて った

바람을 타고 날아올랐어

 

우리는 같이 입을 열었고, 동시에 숨을 내뱉었다. 입을 떠난 소리는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선율과 어우러져 하나의 음악이 되었고 관객들의 곁으로 가서 내려앉았다.

동시에 우리는 몸을 움직여 정해진 동작을 취했다. 우리의 몸짓은 허공에 흐르는 음악을 두르며 춤이 되어 관객들의 망막에 새겨졌다.

처음 네 마디가 끝나고 반주가 흘러나오는 동안, 천천히 안무를 하면서 관객석을 둘러보았다. 멍하니 우리를 바라보던 그들은 곧 소리를 지르며 호응을 해 주었다. 처음 듣는 노래, 처음 보는 춤, 처음 보는 아이돌이지만 그들은 파란색 콘서트 라이트를 흔들며 환호하였다.

빛나는 조명, 솟아오른 무대, 열광하는 사람들. 텔레비전 속에서나 볼 수 있었던 존재들이 내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은, 지금까지 품고 있었던 긴장감과 열등감이 하찮게 느껴질 만큼 아름다웠다.

온갖 감정이 섞인 채로 춤을 추다보니 어느새 내 솔로 파트를 부를 차례가 되었다. 지금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을, 일말의 가감도 없이 그대로 내 목에 담아 노래를 불렀다.








※ 부스를 같이 내는 퓨엔테님의 인포는 차후에 정리하여 올리겠습니다.

 

Posted by sah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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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하시겠습니까?”

하지만 그 사람의 말에 고개를 들 수밖에 없었다. 깜짝 놀라서 튕기듯 고개를 들었고, 다시 그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검은 눈동자는 내게 한없이 진지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아이돌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할 준비가 되었냐고.

노력.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단어였는데, 지금은 미묘한 심정이다. 내가 노력을 싫어하게 된 계기가 없어진 셈이니까

결국 중요한 건 나의 마음가짐이다. 몇 년 간 노력을 부정하던 내가 노력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가. 노력을 할 수 있겠는가. 노력해서……. 아이돌이 될 마음이 있는가.

나는…….”

. 그 사람. . 노력. 연습. . 희망. 아이돌. 무대. .

하고 싶어. 아이돌.”

수 년 간 하지 못했던 그 말을, 마침내 꺼냈다.

그곳에는, 분명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을 겁니다.”

나의 프로듀서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게 몇 번이고 나뉘었다가 합쳐진 세 사람의 목소리는 아득히 먼 곳을 향해 올라가다가 잠시 멈추었다. 2절이 끝난 것이다. 간주가 흘러나오는 동안 잠시 숨을 고르며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베테랑인 린은 여유 있는 미소를 지었고, 다소 지쳐 보이는 나오는 린의 미소에 화답하듯 살짝 웃어주었다. 나도 그들과 함께 웃었지만 표정은 어땠을지 모르겠다. 온몸에 흘러넘치는 감정은,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종류이니까.

이제 길었던 간주가 끝나고 다시 마이크를 잡을 때가 되었다. 간주의 끝을 고하는 솔로 파트는 내가 하게 되어있다. 이 부분은 노래의 여러 가사 중에서도 내 마음에 가장 와 닿았던 부분이었는데, 실제로 부르기 위해 마이크를 잡고 있으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감정이었다.

 

どこかれてた

빛나는 것을 어딘가 두려워했었던

あの自分にただ

그 날의 자신에게 그저

 

한 소녀를 떠올렸다. 빛나는 무대 위 아이돌을 동경했지만 결코 다가가지 못했던 소녀. 노력의 가치를 부정하며 홀로 병실에 남겨진 소녀를. 자신은 안 될 거라며 고개를 젓는 소녀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ずっと / / いて

계속 / 앞을 / 향해


계속하라고 외치는 나와, 앞을 가리키는 린과, 그곳을 향해 가라는 나오. 세 사람의 마음을 담아 다시 노래했다.

 

じてえてあげたいよ

믿으라고 전해주고 싶어

 

호죠씨라면, 가능할 겁니다.’

나를 설득하던 프로듀서의 말이 떠올랐다. 믿음이라는 두 글자와 함께 떠오른 그 말. 세월이 흘러 변해버린 나를 보고도 믿어준 프로듀서. 그를 떠올리자 마음이 따뜻해지며 살짝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Posted by sah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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