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하셨습니다. 저는 잠시 부장님을 만나야 하니 먼저 가셔도 됩니다.”

수고하셨어요. 프로듀서.”


드디어 길고 길었던 오늘의 일정이 끝났습니다. 저는 아픈 다리를 만지며 사무실로 향했습니다. 꽤 오랜 시간 서서 진행하는 토크쇼였기에 다리가 아프네요. 빨리 사무실에 가서 쉬다가 집에 가야겠어요.


문득 창밖을 보니 어느새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늦은 시간이니 사무실에는 사람이 없겠죠? 특히 프레데리카씨나 시키씨가 없었으면 좋겠어요. 사람이 많아 떠들썩한 분위기도 좋지만 지금은 혼자서 쉬고 싶으니까요.


문을 열자 침묵만이 저를 맞이했습니다. 다행이에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소파로 다가가자 나른한 숨소리가 제 귀를 간질였습니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후미카씨가 자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저는 다시 한 번 깊게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후미카씨는 괜찮으니까요.


조심스레 곁에 다가가 앉았습니다. 무릎에 펼쳐진 책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책을 읽다가 잠이 드셨나 보네요. 너무나도 후미카씨 다운 모습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습니다. 아차, 큰 소리로 웃으면 안 되죠. 저는 소리를 억누른 채로 목을 가다듬었습니다.


문득 후미카씨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작지만 도톰한 입술, 높지도 낮지도 않은 적당한 코, 정돈되지 않은 검은색 머리카락이 눈 위를 반쯤 덮고, 그 위에는 항상 쓰고 다니는 흰색 머리띠가 있었습니다. 수수하지만 동시에 수려한 용모입니다.


정말 꾸미지 않아도 이렇게나 아름다운 사람이라니, 반칙이에요. 게다가 무대에 나가기 위해 화장을 했을 때의 모습은……. 저도 나중에 후미카씨처럼 될 수 있을까요. 꼭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후미카씨의 얼굴을 바라보느라 누군가 방에 들어오는지도 몰랐어요. 저와 후미카씨의 평화를 망치는 방해자는, 제 귓가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습니다.


호오, 좋은 광경을 혼자 즐기고 있네?”


화들짝 놀래서 고개를 돌렸습니다. 거기에는 언제나처럼 옅은 미소를 짓고 있는 카나데씨가 있었어요. 불안합니다. 위험합니다. 카나데씨가 저런 표정을 짓고 있다는 건 저에게 장난을 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에요. 저는 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카나데씨에게 소리쳤습니다.


뭔가요, 카나데씨! 그렇게 몰래 발소리도 내지 않…….”

.”


카나데씨가 손가락을 제 입술에 갖다 대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 손을 들어 후미카씨를 가리켰습니다. 저는 그제야 아차 싶었어요. 다행히도 후미카씨는 별다른 반응 없이 잘 자고 있었습니다.


후미카가 깨잖니.”


마음에 들진 않지만 이번만은 카나데씨의 말에 수긍해야겠네요. 저는 다소 기운 빠진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

그래. , 그럼.”


갑자기 카나데씨가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습니다. 그러더니 카메라 앱을 실행시키는 게 아니겠어요. 게다가 저 앱은 분명 무음 셔터 기능이 있는 앱이었습니다. 저는 후미카씨의 눈치를 보며 작은 목소리로 항의했습니다.


카나데씨! 지금 뭐하는 거예요!”

좀처럼 볼 수 없는 모습이잖아? 사진으로 남겨둬야지.”


카나데씨가 행동을 멈추지 않자 저는 그녀의 팔을 양손으로 붙잡았습니다. 하지만 상대는 여고생. 체격의 차이가 분명합니다. 매일 느끼는 거지만, 오늘은 더더욱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심정이에요.


그때, 카나데씨가 제 귓가에 대고 속삭였습니다.


너에게도 한 장 보내줄게.”


한 장. 사진 한 장. 자는 사진 한 장. 그 달콤한 유혹을 들으니 팔에서 힘이 점점 빠졌습니다. 후미카씨의 자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라니. 분명 갖고 싶었지만……. 그래도 본인의 동의 없이 찍은 사진인데…….


제 내면의 악마와 천사가 한창 싸우는 와중에 카나데씨는 이미 스마트폰을 집어넣고 있었습니다. 동시에 제 스마트폰에서 짧은 진동이 울렸습니다.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한 것이겠지요. 저는 결국 악마의 손을 들어주고 말았습니다. 이따가 후미카씨가 깨어나면 어떤 얼굴로 봐야 할지…….


그럼 내일 봐, 아리스.”


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악마와 같은 사악한 미소만을 남긴 채 카나데씨는 떠났습니다.

 







4개월만에 글 쓰네요.

짧은 엽편입니다.

앞으로 짧은 엽편을 계속 쓰면서 데레마스 관련 소재를 이리저리 고민해 볼 것 같습니다.



Posted by sah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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