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있어 워크래프트는 굉장히 재밌게 한 RTS 게임이었다. 특색있는 유닛과 독특한 영웅 시스템, 그리고 심도 있는 스토리가 어린 나를 사로잡았다. 물론 밀리보다는 유즈맵인 카오스를 더 많이 한 나이지만, 그래도 한창때는 워크 리그도 챙겨보고 했었다.
그런 내게 있어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은 굉장히 기대되는 영화였다. 특히 블리자드는 매 게임마다 웅장한 시네마틱 영상을 자랑했기에 영화도 틀림없이 잘 만들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는 너무나도 아쉬웠다.
3부작의 첫 영화답게 워크래프트1의 스토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황폐화된 고향을 뒤로 한 채 아제로스로 건너 온 오크와 인간의 다툼이 주된 스토리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들이 너무나도 부족하다. 최후의 수호자 메디브가 나와 인간들을 도와주는데 대체 메디브는 왜 수호자이며 수호자는 무얼 하는 사람인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레인과 로서의 관계는 나오지만 그들과 메디브의 관계는 상세히 나오지 않는다. 그저 친한척 하니까 친한갑다~ 하고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특히 가장 어이없던 건 가로나와 로서의 로맨스였다. 분명 처음엔 으르렁거리는 두 사람이 어느새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었다. 카드가한테 갑자기 섹드립 치는 것도 정말 뜬금없었다. 가로나라는 캐릭터 자체를 잘못 잡았다. 하프오크, 하프휴먼이라 두 세력 간에서 갈등하며 화해를 이끄는 존재로 만들고 싶었나 본데 너무나도 부족한 설명과 왜 그랬는지 이해가 안되는 심경변화로 인해 가장 망한 캐릭터가 되었다. 유일하게 좋았던 건 레인 국왕이 마지막에 가로나에게 스스로 자신을 죽이라고 했던 점이다. 온화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레인의 캐릭터가 부각됨과 동시에 가로나에게 정당성을 부여해 주었다. 그리고 그걸 로서가 보고 인간측에 알림으로써 갈등을 깊게 해주는 역할도 했고. 그거빼곤 다 마음에 안 들었다.
메디브도 정말 거지같은 캐릭터였는데 몸속에 살게라스가 들어있다는 거 다 빼놓고 그냥 지옥마법에 오염된 거다~ 라는 것 밖에 안 나온다. 오크를 부른게 메디브라면 왜 불렀는지, 그리고 후반부에 왜 악마의 형태로 변했는지 같은 설명이 전혀 안 나온다. 물론 살게라스 얘기를 하려면 티탄부터 고대신까지 연대기를 읊어야 하니까 못했겠지만, 최소한의 설명조차 없이 그렇게 때워놓으니 기가 찰 수 밖에.
극후반 긴장감을 고조시켰던 로서vs블랙핸드도 너무 한 순간에 승부가 나서 좀 김빠졌고, 메디브가 번개로 보호막 만드는 것도 너무 좀 CG가 별로였고, 아무튼 이래저래 불만이 많은 영화였다. 3부작이고 판타지라 반지의 제왕 같은걸 기대했더니... 반지의 제왕은 무슨 반지닦이지.
그래도 오크들의 묵직한 액션이나 로서무쌍, 생동감 넘치는 그리폰, 카드가의 비전마법, 전열을 맞춘 풋맨들의 방패진, 깨알같은 아옳옳옳, 굴단의 무게감, 스톰윈드의 웅장함 등 팬들이 보면 가슴 설레는 장면들이 여럿 있었다. 대부분 장면에서 CG도 좋고. 눈요기로는 상당하다.
결론은 정말 팬들을 위한 영화였다. 아마 워크래프트가 뭔지 모르고 유명한 게임이니까 영화 한 번 볼까? 1편이니 아무것도 몰라도 되겠지? 라는 생각을 가졌다면 그냥 보지 마라. 하나도 이해 못 하고 나올테니. 하지만 워크래프트 RTS, 혹은 와우의 팬이라면 한번쯤은 볼 만한 영화인 거 같다.
흥행이 망할거 같은데 다행히 워크래프트를 매우 사랑하는 중국에서 수익이 생각보다 많이 날 거 같다고 한다. 2편은 아마 스랄의 성장기와 워크2때의 이야기를 다룰 거 같은데 1편보다는 압축할 내용이 적으니 좀 더 나은 내용이 나올 거 같다. 2편을 기대해 본다.
근데 3부작이면 3편은 워크래프트 시리즈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아서스 연대기를 다룰텐데, 그걸 한 편으로 끝낼 수 있나...? 레인 오브 카오스를 1편, 프로즌 쓰론을 1편 해서 4부작으로 해야할 거 같은데. 걱정이 된다.
p.s. 이건 친구들하고 얘기하면서 나온 건데, 2편은 워크2 이야기 죽 나오고 끝난 뒤에 갑자기 화면 어두워지면서 중년 남자의 목소리로 '아들아... 내가 태어났을 때, 온 로데론이 네 이름을 속삭였단다...' 하다가 잠시 뒤에 '아서스...' 하면서 끝날 거 같다. 그럼 난 기립박수 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