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친구가 재밌는 카드게임이라고 하며 유희왕 카드를 학교에 들고왔었다. 당시 한국에 처음 유희왕이발매된 때였고, 첫 스트럭쳐인 카이바와 유우기 스트럭쳐, 그리고 푸른 눈의 백룡의 전설과 강철의 습격 팩이 나온 상태였다.
아무튼 친구들과 스트럭쳐 하나씩 뜯어서 재밌게 했었고, 원작이 만화인 걸 알고 만화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후속작인 유희왕 GX 애니도 매주 챙겨보고 TCG도 매장까지 찾아가 하며 전국대회 지역예선 2등도 하고 하여간 재밌게 했는데 사실 이 영화와는 별로 관련 없는 이야기다. 그냥 생각이 나서 적어보았다. 참고로 중3인가 고1때 TCG를 접었다. 그리고 TCG에 재미를 붙인 나는 판마에 손을 대었고, 그 이후로 하스스톤도 하게 되는데 이건 먼 미래의 이야기다. 물론 지금은 다 접었다. 나는 정규전이 싫다.
이 영화는 유희왕의 여러 후속작(GX, R 등등)과 전혀 관련이 없는, 그리고 애니메이션 오리지널과도 연관이 없는 순수한 유희왕 원작 만화의 후속작이다. 사실 난 애니는 안봐서 모르겠지만, 애니만 본 사람이라면 약간 어리둥절할 부분이 좀 있다고 한다.
내게 다소 실망을 안겨줬던 첫 극장판 빛의 피라미드와 달리, 이 영화는 굉장히 좋았다. 이런 류의 극장판에서 겉돌기 마련인 신캐릭터도 뜬금없이 새로운 설정에 의해 등장하는 게 아니라, 원작의 설정 및 캐릭터와 엮어서 행동에 당위를 부여한 게 마음에 들었다. 물론 캐릭터 그 자체에는 아쉬운 점이 없잖아 있다. 철저히 선역도, 철저히 악역도 아닌 어중간한 포지션을 취해 이도저도 못하다가 결국 또 조크가 악역이 되는 점이 가장 아쉬운 점이다. 뭐 원작에서 모든 일을 꾸민 악의 근원이 조크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 또한 원작반영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기존의 캐릭터들도 만족스러웠다. 별 활약은 없지만 작화보정으로 이뻐진 안즈, 비록 사악한 인격에 지배당해 저지른 일이나 자신의 과오로 받아들이는 바쿠라, 유우기의 친구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아템을 잠깐이나마 봤고, 또 아이가미의 차원속에 갇혀서도 어떻게든 나가려고 발버둥을 쳤던 퍼펙트 죠노우치, 잠깐잠깐 나왔지만 약방의 감초같은 느낌으로 활약했던 모쿠바. 혼다나 류지, 스고로쿠 할아버지도 잠깐씩 얼굴을 비춰줘서 좋았다. (여담이지만 나름 동료들 중 메이저한 캐릭인 마이는 왜 안 나왔는지 모르겠다. 류지도 잠깐 나왔는데 팬서비스로 얼굴이라도 비춰줬으면 좋았을텐데.) 비록 죠노우치의 듀얼이 한 번도 나오지 않았으나 사실 억지로 끼워넣기에는 시간이 부족했고, 또 죠노우치가 낄 만한 스토리가 아니니 이해는 한다.
두 주인공 중 하나인 유우기는 딱 주인공 다웠다. 아이보가 사라진 뒤에 혼자 꿋꿋히 성장해 나가는 모습이 대견하다. 본편 마지막에도 느꼈지만 정말 본편 시작할 때 유우기랑 비교하면 아빠의 눈물이 절로 흐른다. 비록 막타는 아템이 쳤지만 아이가미를 이기고 연달아 카이바를 상대하여 몰아붙이는 모습이 당당한 주인공 다웠다.
아템은... 아니 좋았긴 좋았는데... 초반 카이바와의 듀얼도 좋았고 후반부 연출도 정말 좋았는데... 아니 그래서 왜 후반부에서 목소리 안 낸거야... 왜 그랬어요 감독님 말해봐요 왜 우리 왕님 목소리 거기서 뺐어요 거기서 목소리 한 번 내주면 어디 덧납니까? 어차피 앞부분에 카이바랑 듀얼한답시고 성우 불러놨잖아요. 이왕 불러놨으면 그 후반부에 거기서도 목소리 좀 들려주면 안됩니까? 이 부분이 너무나도 화가 났다. 내 앞에 감독 있었으면 멱살 잡고 흔들었을 거다. 뭐 소리가 없던 그 연출이 더 좋았던 사람도 있겠지만 난 너무나도 아쉬웠고 또 화가 났다.
그리고 또다른 주인공인 카이바. 감히 이번 극장판 최고의 캐릭터라 말하고 싶다. 원작에서도(+GX에서도) 기행으로 유명한 카이바지만 이번 기행은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 오로지 아템과 듀얼을 하겠다는 그 일념 하나로 새로운 듀얼디스크를 만들고 무너진 왕의 석판을 찾아 조각을 모으고 심지어 마지막에는 직접 명계로 찾아간다. 그 중간중간에 백룡 제트기 타고오다가 착륙 직전에 비행기에서 뛰어내리질 않나 솔리드 비전으로 전투기 부서지는 걸 보여주질 않나 조각 하나 조립하려고 우주까지 가질 않나 정말이지 기행의 결정체 같은 느낌이었다. 이와중에 자기 신부에 대한 사랑을 잊지 않고 온갖 백룡 관련 물건들과 백룡 관련 카드들이 우루루 쏟아져 나오는 걸 보니 정말 카이바다웠고 완전 카이바였다.
맨 처음에 말했듯이 나는 이 영화를 워크래프트와 같은 날에 보았다. 하나는 원작이 있는 작품의 후속작이요, 하나는 원작이 있지만 그걸 새로 영화화를 해서 나온 작품이었는데 결과적으로 둘 다 원작을 알아야 제대로 볼 수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게 되어 매우 흥미로웠다. 워크래프트는 원작을 몰라도 알 수 있게 만들어야 했지만은... 그런 점에서는 차라리 대놓고 원작의 후속작이라고 만든 신극장판이 더 나았던 것 같다.
아무튼 유희왕의 팬으로서는 굉장히 재밌게 보았고, 팬서비스가 투철한 작품이라 생각한다. 아마 이제는 안 나올거 같지만, 언젠가 또 나올 유희왕 후속작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