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의 첫 작품은 최근에 보았던, 그리고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영화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 로 시작하고자 한다.
아직 상영하고 있는 작품이기에 혹시나 보지 않은 사람을 위해 본문은 가려둔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이하 MCU)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다 아시겠지만, 이 작품은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져의 후속작이자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이어지는 내용이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 MCU의 다른 작품은 몰라도 이 두 작품은 꼭 봐야한다. 그래야 온전히 이 영화를 이해할 수 있다.
캡틴 아메리카 - 스티브 로저스와 아이언맨 - 토니 스타크를 중심으로 12명의 히어로들이 등장하기에 굉장히 정신이 없고, 또한 분량이 특정 캐릭터들에게 치우칠것이라는 개봉 전과는 달리, 루소 형제는 놀랍도록 캐릭터간의 균형을 맞추었다. 물론 스티브와 토니, 버키, 트찰라 네 사람에 초점이 많이 맞추어져 있지만 다른 캐릭터들도 충분히 자신의 캐릭터성을 뽐내는 장면이 있었다. 이 캐릭터 하면 생각나는 장면들이 하나씩은 있지 않은가.
워머신은 추락 후 재활을 하는 장면.
비전은 완다에게 요리를 해 주는 장면.
블랙 위도우는 헬기에 타려는 트찰라를 막는 장면.
스파이더맨은 거대한 앤트맨을 쓰러뜨리는 장면.
스칼렛 위치는 염력으로 비전을 무릎꿇리는 장면.
호크아이는 감옥에서 토니에게 소리치는 장면.
팔콘은 중간중간 윈터 솔져와 만담하는 장면.
앤트맨은 거대화 하는 장면.
더 많은 장면들이 있지만 일단은 생략한다.
이 영화에서 우선적으로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역시 영화의 부제목이다. Civil War. 남북대전 혹은 내전을 뜻하는 단어다. 다들 알겠지만, 같은 이름을 가진 마블 코믹스가 있다. 시놉시스도 도입부는 비슷하다. 법안을 놓고 토니와 스티브가 대립을 하게 되고, 여러 히어로들이 캡틴 아메리카 사이드와 아이언맨 사이드로 나뉘어 싸우게 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원작이 서로의 신념으로 인해 내전을 하게 된 것과는 달리, 이 영화에서는 신념보다는 개인적인 사정, 생각에 의해 싸우게 된다.
그렇다보니 원작 코믹스에서는 토니가 악역처럼 많이 그려진 데 비해 영화에서는 누가 선역이고 누가 악역인지 구분하기가 힘들다. 그렇기에 12명의 어벤져스 중 누구에게라도 공감할 수 있다. 다들 각자의 이유가 있고, 사정이 있기에 싸운다. 다들 조금씩은 잘못을 하고, 실수도 했다. 그래서 이러한 사태가 벌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그 누구에게도 비난의 화살을 돌리기가 힘들다. 이 점이 시빌 워의 완성도를 굉장히 올렸다고 생각한다.
빌런인 헬무트 지모(원작에서는 제모이지만, 공식 자막에서 지모라고 번역했으니 지모로 표기한다) 역시 커다란 포부에 의해 움직이는 게 아닌, 개인적인 원한으로 어벤져스를 공격한다. 자신의 아버지와 아내, 그리고 아이들의 죽음. 복수자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는 복수자가 되었다. 비록 그 과정에서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었으나, 동기 그 자체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헬무트 지모는 상당히 완성도가 높은 빌런이다. 이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빌런은 현재 MCU 내에서도 단 한 명, 데어데블 시즌1의 빌런인 윌슨 피스크(킹핀) 정도라고 생각한다.
여담이지만 MCU에 등장하는 빌런들은 초인적인 능력이나 두뇌를 지닌 빌런들 보다는 이런 평범한(킹핀의 무력이 완전 평범하지는 않지만) 빌런들이 더욱 두드러지는 거 같다. 위의 두 명도 있고, 윈터 솔져에 나왔던 알렉산더 피어스도 있고.
또한 인상적이었던 점은 세 아들에 관한 점이다. 이 작품에서는 아버지를 잃은 사람이 셋 나온다. 토니, 지모, 그리고 트찰라. 셋의 모습은 판이하게 다르다. 지모는 끝까지 복수를 감행하고, 토니는 원수를 알게 된 순간은 분노하여 달려드나, 시간이 지난 뒤에는 다소 누그러진 모습을 보여준다. 트찰라는 가장 속이 깊은 모습이다. 처음에는 원수를 갚기 위해 격분하지만, 끝에는 아버지의 죽음을 딛고 성장하게 된다. 세 아들의 대조되는 모습도 상당히 잘 표현해주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이 영화의 핵심은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의 대립이다. 한 팀이었던 둘은 소코비아 협정때문에 갈라지게 되고, 다시 화해를 하게 되나 하워드 스타크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두고 다시 한 번 갈라지게 된다. 절친한 친우였던 두 사람은 두 번의 대립, 두 번의 처절한 싸움을 겪으며 감정을 드러낸다. 그러나 역시 두 사람은 같은 숭고한 목적을 지닌 초인들이다. 마지막에 캡틴이 먼저 화해의 제스쳐를 건넸고, 토니는 조용히 사색에 빠진다.
후속작으로 어벤져스3가 예정되어 있기에 두 사람은 다시 같은 편이 되겠지만, 다시 만난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될 지도 주목해볼만한 점이다. 거대한 적인 타노스를 상대하기 위해 완전히 일심동체가 될 지, 아니면 약간의 감정의 골을 남겨 놓을지. 그 부분은 아마 어벤져스 3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액션에 관한 이야기는 길게 말하면 입아픈 정도다. 초반에 라고스에서 하이드라의 잔당들을 소탕하는 부분부터 후반부 캡틴&윈터솔져 vs 아이언맨까지. 어설프고 빠지는 액션이 하나도 없다. 특히 중반부를 장식하는 공항의 6대6 전투씬은 지금까지 나온 모든 히어로 영화를 통틀어 최고의 액션씬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이 공항씬을 이기는 장면은 나오기 힘들 것이다.
각자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 12명의 영웅들과 그들을 서로 싸우게 만든 한 명의 빌런. 모두가 어우러져 만든 영화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 현재 MCU에서 가장 호평을 받는 윈터 솔져 만큼이나 훌륭한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시빌 워 개봉 직전에 개봉을 한 배트맨과 슈퍼맨의 대립을 그려낸 '배트맨v슈퍼맨 : 돈 오브 저스티스'가 정의닦이가 되어버렸기에 더더욱 시빌 워는 빛이 나게 되었다. 이 여세를 몰아 어벤져스 3에서도 훌륭한, 역대급 영화가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p.s. 어벤져스 2 마지막 장면에서 캡틴이 뉴 어벤져스를 보며 '어벤져스!' 라고 말하며 끝이 난다. 끝나기 직전 입모양이 A를 발음하려는 모양이라 어벤져스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어벤져스 어셈블!'을 말하려고 했던 것 아니냐는 추측이 많다. 하지만 결국 어셈블을 말하지 않고 끊었는데, 아마 그때는 어벤져스가 확실하게 다 모이지 않았기 때문에 감독이 일부러 끊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시빌 워에서 어벤져스가 갈라져 서로 싸우게 되니까. 아마도 어벤져스 3에서 완전한 어벤져스가 집결했을 때, 캡틴이 가장 앞에서 힘껏 '어벤져스 어셈블!'을 외치지 않을까. 그 장면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