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공터에서 어린아이 여럿이 뛰놀고 있었다. 항상 전운이 감돌고 있는 안개의 도시지만, 아이들만큼은 여느 도시의 아이들처럼 밝고 명랑했다. 서로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 어른들이지만, 이런 아이들의 모습은 진영을 막론하고 누구나 바라는 모습이겠지.

특히 한 아이가 눈에 띄었다. 밝은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아이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연신 뛰어다니며 웃음을 뿌리고 있었다. 언뜻 보면 여느 아이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지만 아이가 손가락을 움직이자 얘기가 달라졌다. 그 궤적을 따라 밝은 별빛이 사방으로 흩날리는 게 아닌가. 주변에 같이 놀던 아이들은 연신 눈을 반짝이며 호기심을 보였다. 하지만 개중에 어느 정도 나이가 찬 아이가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기겁을 하며 달아났겠지. 능력자들이 세상에 나온 지 제법 되었건만, 아직도 일반인들에게 능력자는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존재다.

벤치에 앉아있던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슬슬 돌아갈 때가 되었다. 조금 더 놀게 해주고 싶지만, 어쩔 수 없지.

엘리! 시간이 됐단다. 이제 가자.”

우웅, 더 놀면 안 돼?”

붉은색 후드를 쓴 아이는 볼을 부풀리며 불만을 토했다. 한창 밖에서 노는 걸 좋아할 나이다. 그렇기에 나도 아이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다. 약속은 지켜야지. 나는 엘리에게 천천히 다가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일 다시 오면 되잖니. 오늘은 이만 가자꾸나.”

, 아라써!”

내일 다시 온다는 말에 엘리는 표정을 밝게 하고 주변의 친구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내 손이 엘리의 머리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이건 내 손이 엘리의 머리를 쓰다듬는 게 아니다. 엘리의 머리가 내 손을 만지는 거다.

아직 나이가 어린 엘리는 주변에 지나가는 모든 게 신기했다. 길을 걷다가도 길가에 있는 풀을 유심히 살펴보기도 하고 지나가는 차에 호기심을 가지기도 했다. 멀리 날아가는 새를 보고는 열심히 손을 흔든 적이 있는데, 나중에 이유를 물어보니 트리비아인 줄 알았다고 했다. 날개가 달린 모든 생물을 전부 트리비아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용기사 중에 다리로 뛰어서 트리비아만큼 멀리 가는 남자가 있다고 하자 그 자리에서 펄쩍 뛰며 대형 폭죽을 터뜨렸다.

오늘은 엎드린 채로 잠을 자는 고양이가 신기한 모양이다. 커다란 고양이를 보더니 그 자리에 멈춰 지그시 고양이를 보고 있었다. 엘리의 시선을 느꼈는지 고양이는 한쪽 눈을 떠서 엘리를 보았다. 그러더니 대뜸 엘리에게 다가오는 게 아닌가. 엘리가 살며시 손을 뻗자 그 손에 얼굴을 비볐다. 엘리가 세상을 다 가진듯한 미소를 지었다.

길고양이가 사람을 잘 따르는구나.”

나도 엘리의 옆에 와서 고양이에게 손을 뻗었다. 그러자 이놈이 고개를 홱 돌리더니 엘리 뒤로 숨는 게 아닌가. 조금 빈정 상했다. . 조금. 아주 조금이야. 손가락 끝에서 불꽃이 살짝 일렁거렸다.

나이오비 언니……. 나쁜 짓 많이 했쪄?”

갑자기 엘리가 울 거 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깜짝 놀란 나는 엘리를 다독여주었다. 다행히 울음을 터뜨리진 않았다. 진정이 된 엘리를 붙잡고 이유를 물어보았다.

이글 아찌가 고양이는 나쁜 짓 한 사람 안다고 했어. 나쁜 짓 많이 하면 고양이가 그 사람 싫어한대.”

두통이 몰려왔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양손으로 감싸 쥐었다.

이글 홀든……! 애한테 쓸데없는 얘기를!”

최근에 외출할 일이 많아서 할 일 없이 빈둥거리는 이글에게 애를 맡겼더니 되지도 않는 소리나 지껄이고 다니는 모양이다. 보나 마나 자기가 골탕먹이고 싶은 사람이 고양이를 싫어하는 거겠지. 덕분에 나까지 피해를 볼 줄이야.

정신을 차려보니 주먹을 쥔 손이 붉은색으로 덮여 있었다. 참자. 참아야 하느니라. 요기 라즈에게 배운 명상을 하자. 일단 크게 심호흡을 하고, 생각을 비우고, 마음을 편안하게. 그래. 천천히. 이글 따위 떠올리지 말고.

이글!”

명상을 포기했다.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난다. 오늘 아침에 임무를 나가지만 않았어도 지금 당장 연합 본부로 뛰어가 모조리 태워버렸을 텐데. 언제 온다고 했지? 두고 보자. 이글 홀든!

불꽃을 화끈하게 일으키고 나니까 좀 진정이 되었다. 주변에 그을음이 잔뜩 생겼지만 애써 외면했다. 커다란 고양이는 어느새 도망가고 없었고 엘리는 나무 뒤에 숨어서 나를 보고 있었다. 커다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그 모습을 보자 내 가슴에 커다란 말뚝이 하나 박히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새삼 퇴치당하는 흡혈귀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미안하구나. 엘리.”

조심스레 다가가 안아주자 작은 몸이 내 품 안으로 쏙 들어왔다. 갑자기 불을 내뿜는 내가 무서웠겠지. 요기 라즈에게 좀 더 제대로 된 방법을 배워야겠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엘리를 위해서. 에밀리아를 위해서.

그 이름을 되뇌는 순간, 가슴 한 편이 아려왔다. 에밀리아. 내 아이. 에밀리아. 에밀리아. 에밀리아가 지금까지 살아 있었다면, 지금의 엘리만큼 되었을까. 엘리만큼. 나는 엘리를 꽉 끌어안았다. 한줄기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나이오비 언니?”

미안하다. 미안해. 엘리야. 미안해…….”

울음을 그친 엘리가 고개를 들고 나를 보았지만 나는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미안하다고 계속 사과만 할 뿐이었다.

 

눈물을 닦은 나와 엘리는 서둘러 모임 장소로 향했다. 이윽고 도시 외곽에 있는 어느 허름한 술집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알코올 냄새가 확 풍겼다. 이것들이 애 데리고 오는데 술 좀 자제하라고 했더니……. 하긴, 술을 앞에 두고 그럴 리가 없지.

, 엘리 왔나?”

커다란 맥주잔을 들고 벌컥벌컥 들이키던 도일이 엘리를 보고 손을 흔들자 엘리가 쪼르르 달려가 안겼다. 그러자 도일은 맥주잔을 거칠게 놓고 엘리를 들어 어깨 위에 앉혔다. 덩치는 산만한 남자가 애들은 참 좋아한다니까.

와아, 높아! 도일 아찌 크다!”

아이씨가 좀 크다 아이가. 쩌기 주먹 잘 쓰는 놈만 빼면 내만한 덩치가 없다카이.”

, 그랑플람 재단의 곰 같이 생긴 사내도 있긴 하지.”

같이 마시고 있던 휴톤이 거들었다. 옆에 빈자리에 앉은 나는 주인에게 알코올이 없는 음료 한 잔을 주문했다. 술을 싫어하진 않지만, 엘리 앞에서 마시고 싶진 않았다. 한편, 도일의 어깨에 앉은 엘리는 오늘 있던 일을 말하느라 바빴다.

그래서 나이오비 언니가 과자도 사줬어!”

내한테는 술 한 잔 안 사주는 가스나가 아한테는 디게 잘 해주노.”

엘리에게 말하며 도일은 호탕하게 웃었다. 한 번도 사주지 않은 내게 섭섭해서 이런 말을 했다기 보단 그만큼 내가 엘리에게 잘해준다는 의미로 한 말이리라. 어쩐지 부끄러워져서 조용히 음료를 홀짝였다. 이윽고 도일의 어깨에서 내려온 엘리가 나에게 쪼르르 달려왔다. 나는 말없이 엘리를 내 옆에 앉히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꼬맹이에겐 이게 어울리지.”

어느새 휴톤이 엘리 앞에 우유병을 내려놓았다. 엘리는 반색을 하며 우유를 들이켰고, 우리는 각자 앞에 놓인 음료를 마셨다. 가만히 앉아 있자 주변에 있던 지하연합의 사람들이 엘리에게 먹을 것을 주고 갔다. 그때마다 엘리는 별빛처럼 반짝이는 미소를 지었고, 나는 더없는 행복을 느꼈다.

슬슬 가야겠군.”

가게에 걸린 시계를 확인한 휴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일어나려고 했지만, 문득 술을 한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앉았다. 슬슬 술집에 사람이 많이 줄어들 시간이니, 조용히 혼자서 마실 수 있겠지.

미안한데 엘리를 데리고 먼저 가 줄래?”

, 그러지.”

내 심정을 읽은 휴톤이 도일과 엘리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저 둘이 있으면 엘리도 안심이다. 연합에 가면 엘리와 놀아줄 피터도 있고, 토마스나 루이스도 있으니 지금은 잠시 엘리 생각을 놓아도 되겠지.

이윽고 주문한 칵테일이 도착했고 나는 혼자서 홀짝이기 시작했다. 낮에 울었던 일을 떠올리니 기분이 착 가라앉았다. 에밀리아. 나는 평생 그 아이를 가슴 속에 품고 지내겠지. 그것이 나 자신을 갉아먹는다 해도, 절대로 잊을 수 없다.

좀 의외였어.”

누군가 내 쪽을 향해 말을 건넸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 시간에 내가 아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지. 아마 다른 사람을 향한 말이 우연히 내 귀에 들어온 것이리라. 헌데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인데…….

당신이 아이에게 그렇게 친절하게 대하다니. 잉게 나이오비.”

기억났다. 사람의 신경을 긁는 이 목소리의 주인공이. 나는 고개를 홱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구석 테이블에 혼자 앉아있는 금발의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 모자를 비스듬히 쓰고 있는 여성은 지나가던 남자들이 한 번쯤은 고개를 돌릴 굉장한 미인이었다. 그러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그녀를 한 번 쳐다봤을 뿐. 그 이상의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2차 능력자 전쟁의 한 획을 그은 능력자 엘윈의 드니스이니까.

남을 생각하는 마음이 전혀 없는 여자인 줄 알았는데.”

네가 왜 여기에 있지?”

그녀의 말을 애써 무시하며 쏘아붙였다. 내 손끝에 맺힌 불꽃이 살짝 떨렸다. 잠시 내 손을 바라보던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감정이 없는 표정이었다.

술집에 오는데 다른 용무가 있던가?”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다. 여긴 그냥 술집이니까. 그러나 이곳은 지하연합의 사람들이 많이 오는 단골 술집이다. 회사의 능력자가 올 만한 곳이 아니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을 텐데. 그나저나 도일하고 휴톤은 드니스가 있는데 왜 말을 안 해준 거야. 둘 다 너무 사람이 좋아서 탈이야. 회사의 능력자들과 한 번 같이 작전을 수행했다고 완전히 화해한 것처럼 하고 있으니. 내게 저 여자가 어떤 짓을 했는지 잊은 건가? 하긴, 다른 사람이 알 턱이 없지. 그 고통은 온전히 나만의 것이니까.

그래. 알았어. 알았으니까 술집에 왔으면 조용히 술 처먹고 꺼져.”

엘리…… 라고 했던가, 저 아이?”

이번에는 그녀가 내 말을 못 들은 척 받아넘긴 채 자기 할 말을 꺼냈다. 웬만하면 무시하려고 했는데 엘리의 이름을 꺼낸 이상 무시할 수도 없게 되었다. 사랑스러운 우리 아이에게 한 마디라도 싫은 소리를 꺼낸다면, 철저히 응징하리라.

엘리가 왜?”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네.”

굉장히 의외의 말이 튀어나왔다. 보나 마나 내 속을 긁는 말을 꺼낼 거라 생각했는데. 하긴 아무리 비뚤어진 사람이라도 별빛처럼 빛나는 엘리를 본다면 절로 미소를 짓게 될 테지. 아무렴. 이 여자도 뜻밖에 좋은 면모가 있구나.

그럼.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모아온다 해도 저 아이에겐 미치지 못할걸?”

비뚤어진 너와는 달리 말이지.”

또다시 툭, 하고 내게 악담을 던졌지만, 이 정도는 용서해줄 수 있다. 지금 우리 엘리가 저 머리에 꽃을 꽂은 여자에게 찬사를 들었는데 내가 욕 좀 먹은 게 대수인가. 얼마든지 맛나게 먹을 수 있다. 오늘은 내게 무슨 소리를 해도 용서해주마. 그렇게 마음먹었다.

너의 그런 눈빛은 카인을 볼 때만 나오는 줄 알았는데.”

방금 한 말은 취소다. 역시 저 여자는 좋아할 수가 없다. 여기서 그 사람의 이름은 또 왜 꺼낸단 말인가.

혼자 술 먹으러 왔으면 조용히 처먹지그래?”

아는 사람이 있는데 혼자서 먹기만 하는 것도 그렇지 않아?”

알기는 개뿔이. 그래, 아는 사이는 맞지. 친밀한 지인이 아니라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철천지원수라 그렇지. 저런 가시 돋친 말을 아무런 표정변화 없이 무표정으로 할 수 있다는 게 더 놀랍다. 식물을 조종하는 능력자라서 그런가? 평소에도 가시를 많이 다루기 때문에 세 치 혀로도 가시를 능숙하게 다루는 건가?

저번 달에 너를 봤어.”

……!”

설마 그걸 본 건가. 그 누구에게도 들키기 싫었던 그 장면을. 특히 저년에게는 정말 보이기 싫었던 그 장면을!

카인에게 선물을 줄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뒤돌아서는 네 모습을 말야.”

……어떻게?”

나도 카인 주변에 있었으니까. 그리고 불에 크게 덴 이후로는 불을 다루는 능력자들을 감지하는 연습을 많이 했거든. 너나 불의 마녀 정도는 가까이 있으면 눈치챌 수 있어. , 아직 불완전하지만 스노우 퀸도 포함되겠군.”

혼자서 주절주절 설명하였지만 그 목소리는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새하얗게 백지가 된 머릿속이 붉게 차오르기 시작했다. 불꽃을 나의 내면을 차지한 것으로 모자라 서서히 밖으로 비집고 나오기 시작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드니스는 다시 한 번 내 심장을 찔렀다.

아이에게는 그렇게 잘 표현하면서, 카인에게는 왜 하지 못하지? 거절이라는 걸 모르는 아이와는 달리, 카인에겐 거절당할 게 뻔하니까 그런 건가?”

……닥쳐.”

겁쟁이구나. 잉게 나이오비. 넌 그저 걸어 다니는 재앙 덩어리일 뿐이야.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 한 번 할 줄 모르는, 쓸모없는 재앙 덩어리지.”

 


그 입 닥쳐!”


 

순간 나이오비의 주변이 폭발했다.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불꽃은 주변에 있던 의자와 탁자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나이오비는 매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양손에는 불꽃이 가득했다.

너무 도발한 건가. 하지만 그녀를 볼 때마다 한 마디 쏘아주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 이것 또한 심장의 외침이리라. 카인을 대할 때 두근거리는 심장과는 다르지만, 내가 거부할 수 없는 본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나와 그녀는 상극이다. 소속부터가 회사와 연합이고, 능력 또한 판이하다. 나는 싱그러운 자연이고, 그녀는 나를 태우는 불꽃이다. 그리고 한 남자를 두고 다투는 사이이기도 하다. 물론 그 남자는 정작 다른 여자만을 보고 있지만.

그래서 심장의 외침에 따라 그녀를 도발했지만, 좀 심했던 모양이다. 연합의 스카우터 요기 라즈에게 명상을 배웠다고 해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아직 이 정도도 버티지 못한단 말이지. 그나저나 좀 위험한 수준이다. 이대로 가다간 포트레너드 사건의 재림이 될지도 모르겠다. 슬슬 말려볼까.

근데……. 어떻게 말리지?

진정해. 잉게 나이오비. 죄 없는 술집을 태울 셈이야?”

닥쳐. 닥치라고! 이 썩을 년이!”

나이오비의 손에서 한 줄기 불꽃이 날아왔다. 나는 급히 내 주변에 꽃을 세워 방어했다. 곧이어 두 개의 화염구가 추가로 날아왔지만, 내가 세운 꽃잎은 굳건하게 버티었다. 그렇지만 점점 불꽃이 거세지고 있었다. 내 꽃잎도 위험하지만, 이 술집도 서서히 불이 번지고 있었다. 곤란하게도 나는 불을 진화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내 몸 하나 간수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지만, 자칫하다간 이 술집이 날아가게 생겼다. 거기에 창고에는 알코올이 다량 함유된 술이 많다. 어쩌면 큰 폭발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포트레너드 사건을 생각해.”

이만하면 손을 멈출 때가 되었을 텐데? 그러나 내 생각과는 달리 불길은 커지기만 할 뿐이었다. 분명히 내 화법에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역시 너무 화를 돋궜나. 아무래도 슬슬 술집을 버리고 내 몸을 빼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 구원의 손길이 왔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루이스와 트리비아가 들어온 것이다. 아마 연합 사람들과 친한 주인장이 연락한 모양이다. 빙결 능력자인 루이스가 왔다면 안심해도 되겠지.

나이오비! 그만 해!”

루이스가 주변에 얼음을 만들어 불 위에 덮기 시작했고 트리비아는 나이오비에게 달려가 그녀를 끌어안았다. 저렇게 하면 뜨겁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과연, 트리비아의 옷이 타들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트리비아는 나이오비를 놓지 않았다. 다행히 효과가 있는지 나이오비의 몸에서 나오는 불길이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술집에 옮겨붙은 불은 이미 루이스가 모두 진화한 뒤다.

술집에서 연합의 발화 능력자가 불을 냈다고 해서 왔더니, 다행히 끝난 모양이군.”

어느새 뒤쪽에 나타난 알베르트 로라스가 말했다. 과연 각력 능력자. 이럴 때는 신속하게 지원을 와 준다. 그나저나 로라스가 이곳에 왔다는 건 이미 소문이 많이 퍼졌다는 이야기인가? 돌아가면 이사가 날 호출하겠군.

무어라 이야기를 나누던 두 여자는 이윽고 술집을 나섰다. 남아 있던 루이스가 이쪽을 바라보았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건가?

무슨 일인가, 루이스?”

침묵하고 있는 나와 루이스 대신에 로라스가 거들어주었다. 잠시 로라스를 쳐다보던 루이스는 이내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로라스 씨. 다음에는 좀 더 좋은 일로 뵈었으면 좋겠군요.”

나도 마찬가지일세.”

인사를 마친 루이스도 두 여자를 따라나갔다. 잠시 술집을 둘러보던 로라스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왜 이런 일을……. 하마터면 포트레너드 사건이 또 일어날 뻔했지 않나.”

도발이 다소 지나쳤던 모양이야. 인정하지.”

도발이라는 단어에 로라스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상당히 언짢은 표정이다. 하긴 정의를 중시하는 그는 남을 도발하는 일 따윈 하지 않을 테니까. 저급한 행위로 보이겠지. 그렇다 해도 상대가 같은 회사 소속인 여성이기 때문에 무어라 잔소리를 하지 않는 것도 정말 로라스답다.

일단 가지. 이사님이 내일 아침에 보자고 하시는군.”

역시나 이사의 호출인가. 차라리 대표의 호출이면 좋으련만. 전대 대표인 명왕과는 달리 지금의 대표인 브뤼노는 둥글둥글한 성격에, 호색한이기 때문에 예쁜 여자의 말이라면 껌뻑 죽는다. 웬만한 실수를 해도 나나 타라같은 미인이라면 넘어가 주는 편이다. 하지만 윌라드 이사는 사소한 것 하나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다음 날 아침 만난 윌라드는 나의 예상대로 화가 많이 나 있는 상태였다. 책상에 쌓여 있는 서류를 보니 오늘 할 일도 제법 많은 모양인데, 내가 더 일을 만들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 타이밍이 안 좋다.

그녀를 도발해서 어쩔 작정이었습니까?”

글쎄, 별생각 없었는데.”

솔직하게 대답했지만 그게 이사의 화를 더 돋운 모양이다. 그의 주름진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그는 한쪽에 쌓여 있던 서류를 내 앞에 던졌다.

이게 뭔지 아십니까?”

그럴 리가. 나는 회사 소속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능력자로서 소속된 것일 뿐. 문서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는다. 이런 건 타라나 다이무스가 하는 일이지.

방금 연합에서 보내온 서류입니다. 오늘 있었던 사건의 보상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슬쩍 곁눈질로 보니 적지 않은 금액이 적혀 있었다. 술집에 대한 보상 금액 말고도 정신적 치료비까지 포함을 시킨 모양이다. 설마 이걸 이렇게 써먹을 줄은. 분명히 전에 봤던 연합의 그 참모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겠지.

덕분에 토니 리켓이 좋아서 날뛰고 있겠군요. 제가 그 녀석에게 건수를 잡혀야겠습니까?”

매사에 날카로운 헬리오스의 이사는 연합의 참모에 대해서도 크나큰 적개심을 품고 있었다. 하긴, 윌라드가 싫어하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명왕과도 사사건건 부딪치던 그인데.

내가 침묵으로 일관하자 잠시 손으로 머리를 짚더니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말했다.

이미 벌어진 일, 잔소리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당신에게는 근신 처분을 내리겠습니다. 당분간 회사 근처를 벗어나지 마십시오. 제가 말하기 전까지 말입니다.”

생각보다 크지 않은 처벌이다. 아마 최근 연합과의 사이가 다시 나빠지고 있어서 능력자들의 컨디션을 최대한 보존하기 위함이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 방을 나섰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내 방에서 푹 쉬어야겠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내 방을 향해 가는데 누군가 앞을 가로막았다.

한 건 했다면서, 드니스?”

쾌활하게 말을 건네는 붉은 머리의 여자는 타라였다. 누구에게나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티 없는 성격이라 회사 내에서도 인지도가 높다. 나도 어느 정도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상대이기도 하고.

그렇게 됐어.”

그나저나 나이오비는 아직 불안정한가 봐?”

그녀의 정신이 불안정하다는 건 회사나 연합에 있는 능력자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 아닌가? 내가 잠시 의문을 품자 내 표정을 본 타라가 말을 정정했다.

정신 말고. 불꽃 말이야.”

생각해보니 타라는 나이오비와 같은 발화 능력자였지. 물론 나이오비처럼 통제하지 못하는 재앙이 아니라 완벽하게 다룰 줄 아는 안정된 불꽃이지만.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관점으로 그녀를 보는 것도 당연하다.

여전히 불안정해. 인도 출신의 스카우터에게 정신을 통제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는데 썩 효과는 없는 듯해.”

, 그래?”

그녀가 골몰히 생각하며 손가락을 튕기자 허공에 불꽃이 흩날렸다. 허나 나이오비의 일렁거리는 불꽃과는 다르다. 금방이라도 흘러넘칠 듯이 무절제한 그 불꽃과는 달리, 타라가 만들어 낸 불꽃은 확실한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역시 회사의 에이스라는 별명이 아깝지 않다. 불이라면 전부 싫어하는 나지만, 그녀의 불꽃이라면 믿을 수 있다.

좋아, 그럼 한 번 가볼까.”

어딜 가는 거지?”

불의 마녀는 씩 웃었다. 장난꾸러기 요정 같은 미소였다.

 


어디긴 어디야. 연합이지.”

 


언제나 무표정한 드니스에게 인사를 건네고 회사를 나섰다. 나이오비 잉게. 언젠간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었는데, 이렇게 기회가 되었으니 만나봐야지.

회사에 처리할 일이 많지만 나는 내 할 일을 다 했다. 어차피 난 계약직 비서인걸. 내가 할 일만 다 하면 끝이야. 은근슬쩍 연구실로 도망치려는 드렉슬러를 잡아 서류 앞에 앉혀 놓았으니 알아서 하겠지.

연합의 본부에 도착하니 나를 바라보는 수많은 시선이 느껴졌다. 회사의 에이스라는 거창한 이명을 달고 다녀서 그런지 내 이름은 생각보다 많이 알려져 있다. 물론 내 빨간 머리와 어깨가 드러나는 옷도.

어이, 회사의 에이스가 연락도 없이 무슨 일이지?”

나를 맞이하러 온 능력자가 누군가 했더니 이글 홀든이었다. 제법 말이 통하는 사람이 나와서 다행이다. 매사에 가벼운 사람이기 때문에 달래기도 쉬울 터. 게다가 다이무스에게 이글을 다루는 법을 전수받았지.

어머, 홀든가 제일의 쾌검사께서 나올 줄은 몰랐는데?”

호오? 보는 눈은 있구먼! 역시 회사의 에이스답군!”

역시나. 칭찬을 해주지 대번에 기분이 좋아져 크게 웃었다. , 여기서 결정타를 날려주도록 할까.

이렇게 보니까 다이무스보다 더 나은 거 같은데? 제레온이 물려준 세계 최고의 검사라는 타이틀이 사람은 잘 못 찾은 거 같네.”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니까. 항상 큰형 얘기만 나오면 큰형을 누가 맡을 거냐 이러면서 한숨을 쉬는데 나 있잖아 나. 왜 그걸 모르지?”

그러면서 그는 자기 자랑을 늘어놓았다. 관심 있게 들어주는 척하며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자 이내 신이 나서 말이 빨라졌다. 한참을 떠들던 도중 슬슬 때가 됐다고 생각한 내가 그의 말을 끊었다.

아참, 방금 생각났는데 나이오비는 어때? 회사를 대표해서 사과도 할 겸 그녀의 상태를 보러 왔는데.”

, 그래? 이런. 내가 너무 길게 붙잡고 있었군. 하하, 미안.”

무안해서 머리를 긁적이던 이글은 이내 나와 함께 연합 내부로 들어갔다. 건물 안에서도 수많은 시선이 느껴졌지만 애써 무시했다. 하지만 커다란 회의장을 지나갈 때에는 나를 보는 시선이 너무나도 많아 전부 태워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정확히 눈알만 노려서 태워버리는 거지.

나이오비는 지금 많이 진정이 됐어. 그래도 휴식을 취해야 하니까 너무 길게 말하진 말고.”

그녀는 현재 안쪽에 있는 독방에 홀로 있었다. 혹시라도 감정이 격해져서 주변에 있는 사람을 태울까 염려해서라고 설명해 주었다. 환자를 독방에 방치하다니, 뭐 나이오비의 이명을 생각해보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겠지만.

같은 불 능력자니까 잘 맞을지도 모르겠는데.”

독방의 문을 열어준 이글은 끝나면 불러달라며 바로 옆방에 들어갔다. 육중한 철문을 열자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있는 나이오비가 보였다. 멀리서 본 적은 있지만, 직접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같은 능력을 지닌 능력자라 그런지 친근감이 솟구쳤다.

서로 얼굴 보는 건 처음이지? 발화 능력자 중에서 나를 제외하고 가장 유명한 사람이라 꼭 만나보고 싶었어. 잉게 나이오비.”

……그래서 뭐지?”

하지만 나이오비는 내게 큰 경계심을 품고 있었다. 같은 발화 능력자인데, 좀 더 자상한 시선으로는 볼 수 없는 건가? 물론 널린 게 발화 능력자지만 나와 너는 그중에서도 특별할 텐데. 그 때문에 나는 호감을 느끼고 있는 거고.

그냥.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 만나보고 싶었어.”

맞은편에 있는 철제 의자에 털썩 앉아 천천히 나이오비를 관찰하였다. 아직 마음이 완전히 진정되지는 않았는지 손끝에서 불꽃이 일렁거렸다. 혀를 날름거리는 불꽃은 그 형태가 뚜렷하지 않다.

나는 불의 마녀, 너는 재앙이라 불리는 이유는 알고 있지?”

나는 오른손을 들어 나이오비를 향해 뻗었다. 한 줄기 불꽃이 팔을 타고 손끝을 휘감았다. 나이오비의 불꽃과는 달리 모양이 제대로 잡혀 있었다. 불똥 하나 헛되이 흘리지 않고 정확히 내 손에 머물러 있는 불꽃을 보자 나이오비의 눈이 꿈틀거렸다. 그녀의 주변에 불꽃이 더 많이 튀었다.

네 능력이 잘났다고 자랑하러 온 거야? 그렇다면 썩 꺼져. 태워버리기 전에.”

불을 다루는 능력자를 태워버린다고 하니 우스운 소리이긴 하지만 상대는 재앙의 나이오비다. 다른 발화 능력자라면 누구와 싸워도 압도할 자신이 있지만, 그녀는 다르다. 미세한 조정은 내가 훨씬 앞서지만 피아를 가리지 않고 모조리 태워버리는 화력은 그녀가 위다. 동귀어진을 각오하고 덤빈다면, 제아무리 나라도 무사하진 못할 터. 나이오비 또한 그 점을 잘 알고 있겠지.

오해하지 마. 자랑하러 온 건 아냐.”

그럼 뭐지?”

네가 원한다면, 내가 불꽃을 다루는 법을 가르쳐 줄 수 있어.”

나이오비가 나를 노려보았다. 눈빛에는 의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하긴 지금은 잠시 휴전 상태지만 회사와 연합은 결국은 적이니까. 적대하는 단체의 중요 인물이 와서 자신에게 가르침을 준다고 하면 뭔가 수상한 의미가 담겨 있지 않나 하고 의심하는 것도 당연하지.

회사의 에이스가 내게 왜 그러는 거지? 우린 적이야. 타라.”

반응이 너무 예상대로 나와서 하마터면 실소를 흘릴 뻔했다. , 이제 그녀를 설득할 적절한 이유가 필요할 타이밍이다.

드니스에게 들었어. 최근에 연합에 온 엘리라는 아이를 극진히 보살펴주고 있다며?”

나이오비의 표정이 한층 날카로워졌다. 저 반응만 봐도 그녀가 얼마나 엘리를 사랑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역시 그런가 보네. 그런 점은 마음에 들어. 누군가를 소중히 여기고, 그 사람을 지키기 위해 능력을 쓴다는 점.”

…….”

하지만 지금의 네 불꽃은 주변 사람을 상처 입힐 뿐이야. 그러니 내가 도와줄게.”

어느새 그녀의 주변에 있던 불꽃이 사라졌다. 나이오비는 내게서 눈을 뗀 채 조용히 침묵하고 있었다. 아마 그녀에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리라. 나는 조용히 그녀를 기다렸다.

이윽고 그녀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던 적의는 매우 옅어진 상태였다. 어느 정도는 신뢰를 얻은 듯했다. 그렇다면 긍정적인 대답을 기대해도 될까.

타라. 진영에 얽매이지 않고 내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건 고마워. 하지만, 이건 내 일이야. 내 불꽃은 온전히 나의 것.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해.”

그래? 아쉽네.”

거의 다 넘어왔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부족했던 모양이다. 아쉽지만 미련을 접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와 간단히 작별인사를 주고받은 뒤 방을 나섰다. 다시 이글을 부르려고 옆방 문을 열었는데 그곳에 이글은 없었다. 대신 안경을 쓴 청년이 앉아 있었다.

반갑습니다. 불의 마녀 타라 시바스 조노비치.”

처음 보는 얼굴인데 날 아는 사람인가? 하긴 연합의 사람이라면 연합에 소속된 능력자들의 얼굴 정도는 숙지하고 있을 테지. 길을 걷다가도 종종 인사를 받는데 하물며 연합 내에서는 어떨까.

그런데 이글을 내보내고 대신 나를 맞이할 사람이라면 연합에서도 꽤 높은 사람 같은데, 누굴까. 일단 연합의 능력자들은 다 얼굴을 알고 있으니 아닐 테고. 스노우 퀸 앤지 헌트는 당연히 성별이 다르니 아니고. 그렇다면, 남은 사람은 한 명뿐이군.

토니 리켓?”

바로 알아보시는군요.”

연합의 참모이자 2인자. 그리고 인형실 끊기 작전을 지시한 토니 리켓인가. 과연, 한눈에 봐도 총기가 넘쳐 보인다. 비능력자에 전투력도 거의 전무한 그이지만, 능력자 대부분이 그의 두뇌에 경의를 표하는 수준이니, 말 다했지. 물론 나 또한 그러하고.

모를 리가 있나. 인형실 끊기 작전에서 나 대신 도일을 데려간 사람인데.”

그건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대한 변수를 줄여야 했죠.”

내가 웃으며 농담 삼아 꺼낸 이야기에도 곧바로 허리를 숙이고 사과했다. 과연 소문대로네. 전쟁에서 전략과 전술을 짜는 참모이지만 의외로 마음이 여린 사람이라는 것이. 하지만 막상 작전을 만들 때는 개인적인 감정을 모두 배제하고 냉정하게 판단하여 최상의 결과가 만들어지도록 한다는 점이 무섭다. 능력만 된다면 어린아이조차도 전쟁터에 내보내는 것을 고려하는 사람이니까. 예전에 회사에 있던 배신자 재스퍼도 뛰어난 참모였지만, 토니 리켓에 비하면 그도 범재에 지나지 않겠지.

그래서 이글 대신에 나를 에스코트해 주려고 여기 있는 건 아닐 테고, 무슨 일이야?”

당신에게 부탁할게 있습니다.”

부탁? 토니 리켓이 나에게? 회사를 통해서 연락을 넣지 않고 내게 직접 말하는 걸 보니 개인적인 부탁 같은데, 그가 내게 할 만한 부탁이 뭘까?

흐음, 들어보고 판단할게.”

나이오비씨에게 불을 통제하는 방법을 가르쳐줬으면 합니다. 보수는 드리지요.”

순간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이거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있을 줄이야. 재밌는걸. 그는 어리둥절하게 나를 바라보았지만, 나는 한동안 박장대소를 그치지 못했다. 한참을 지난 뒤에야 나는 그에게 사과하며 말을 꺼냈다.

, 미안. 미안해. 사실 내가 여기 온 이유가 그거 때문이어서.”

당신이 나이오비씨에게 가르쳐주러 왔다는 말씀인가요?”

. 본인에게 거절당했지만.”

그렇습니까.”

그는 잠시 혼자서 골몰히 생각했다. 나이오비가 거절한 이유를 묻지 않는 걸 보니 대충 짐작이 간다는 건가. 곧 생각을 끝마친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말했다.

어쨌든 알겠습니다. 그런 제안을 해 주신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합니다. 회사 소속으로서 그런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이 남자, 내가 회사 내에서 어떤 위치를 가지는지 모르는 건가? 아니면 알아도 예의상 해준 말인가? 어찌 되었던 제법 예의 바른 남자다. 꽤 마음에 들었다.

난 어차피 계약직 비서니까. 설령 명왕이라 할지라도 날 마음대로 하지 못해.”

자신감이 넘치시는군요.”

자신감이 아니라 사실이니까. 내가 꿀릴 건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왜 내게 그런 부탁을 하는 거지? 나이오비을 좀 더 유효한 전력으로 쓰기 위해서인가?”

답을 알지만, 가벼이 질문을 던져봤다. 토니 리켓이라면, 아니 그가 아닌 누구라 해도 연합의 2인자라는 직책을 달고 있다면 마냥 Yes라고 대답하진 않을 것이다. 뭐라고 핑계를 대던, 둘러대던,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겠지. 그의 명석한 두뇌에서 나올 답이 궁금한데?

아닙니다.”

일단 여기까지는 예상대로. , 그럼 이제 뭐라고 대답을 할 셈일까.

안타리우스로부터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서죠.”

?”

너무나도 의외의 답변이 나와 혼란스러운 나머지 얼빠진 소리를 냈다. 예상 답안을 열 개쯤 생각하고 있었고 이 범위를 벗어나지 않을 거라 확신했는데 느닷없이 안타리우스라니. 이 무슨 뜬금없는 말인가.

안타리우스라니? 갑자기 그게 무슨…….”

대다수의 사람은 안타리우스는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그렇게 믿지 않습니다.”

안타리우스가 괴멸되지 않았다는 건가?”

회사와 연합은 인형실 끊기 작전을 시행하여 안타리우스의 수장 노인을 죽였다. 수장을 잃은 안타리우스는 붕괴했고 이제 약간의 잔당만이 남아 반항을 하는 실정이다. 그런데 일부 능력자들은 여전히 안타리우스는 건재하며, 사회의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토니 리켓은 그들을 믿는다는 이야기다.

증거는 많지 않지만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세계 각지에서 파괴와 전쟁을 일으키는 그들에게 나이오비씨는 좋은 기폭제겠지요.”

확실히 그랬다. 만약 토니 리켓의 말처럼 정말로 안타리우스가 아직 건재하다면, 충분히 나이오비를 노릴 가능성이 있다. 조금만 건드려도 곧바로 재앙을 만드는 그녀는 안타리우스의 좋은 먹잇감이겠지. 조금이라도 회사에 피해를 준다면, 윌라드는 좋은 건수를 잡았다고 연합을 공격할 테고.

그 말이 사실이라면……. 큰일이겠네.”

. 그래서 당신께 부탁하려고 했습니다만, 본인이 거절한다니 어쩔 수 없군요.”

할 말을 끝냈다는 듯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를 데려다 주려는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혼자서 생각을 정리할 필요성을 느껴 그의 호의를 거절하기로 했다.

괜찮아. 이쪽으로 쭉 가면 되지?”

괜찮으시겠습니까?”

물론. 난 길치가 아니니까.”

나는 그와 악수를 한 뒤 연합 건물을 나섰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쳐다보았지만, 손끝에 불을 피우자 다들 고개를 돌렸다. 입구 근처에서 어느 여성과 노닥거리던 이글만이 큰형에게 안부를 전해주라며 손을 흔들었을 뿐이었다.

안타리우스. 그들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으며 어디까지 퍼져 있는 걸까. 그들은 정말 괴멸되지 않았을까? 많은 의문이 남는다. 현재 안타리우스의 존재를 의식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니 내가 토니 리켓에게 들은 이야기를 해준다 해도 믿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 일터. 누구에게 말을 해줘야 믿을까.

순간 툭, 하고 누군가와 부딪쳤다. 너무 깊게 생각을 하느라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한 탓이다. 나는 급히 부딪친 사람에게 사과를 건넸다.

, 미안해요.”

무엄한 것. 똑바로 봐라.”

내게 핀잔을 주며 지나간 사람은 굉장히 이상한 사람이었다. 화려한 장식이 달린 검은 후드를 눌러쓰고 있었는데 살짝 스치면서 본 얼굴에는 푸른색 립스틱을 짙게 바르고 있었다. 남자가 립스틱을 바르는 경우도 흔치 않은데 그 색도 특이해서 더 놀랐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

 


이상한 사람이네.”


 

감히 이 몸에게 이상한 사람이라니, 당장 구원해주고 싶었지만 여기는 보는 눈이 많은 곳이다. 일을 벌여서 좋을 건 없지.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그대로 연합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런 일을 이 몸이 직접 하는 게 마음에 들진 않지만 그만큼 중요한 일이니까. , 때론 교주님께서 직접 가야 신도들의 충성도도 올라가지 않겠나. 아이작 놈은 무식하게 죽이는 것만 할 줄 알지 감언이설로 꾀는 방법을 모른다. 그러니 이 몸이 나서야지.

해가 떨어지고 막 밤이 되었을 무렵, 연합 본부 근처의 약속 장소로 가니 한 남자가 나를 향해 달려왔다. 보아하니 이놈이 연합에 심어두었던 첩자인 듯했다. 그는 나를 보더니 곧바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오오, 교주님! 세상에, 교주님께서 어찌 이 누추한 곳까지 직접 오셨습니까!”

신도를 보살피는 데에는 장소를 가리지 않지. 고개를 들라.”

그는 감격에 젖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너무 많이 봐서 이젠 지겨운 눈빛이다. 저런 놈들이 어디 한둘이어야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가 눈물을 흘리며 다시 고개를 조아렸다.

제가 그간 연합에 있으면서도 별다른 성과를 올리지 못하였나이다. 부디 용서해 주시옵소서!”

어차피 기대도 하지 않았어. 너희 같은 떨거지들은 중요한 일이 생길 때 사용하는 소모품이니까. 하지만 이걸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지. 나는 몸을 낮춰 손으로 그의 고개를 잡아 올렸다. 눈물범벅이 된 남자의 얼굴은 추하기 그지없었다.

전지전능한 내가, 네 죄를 사하노라.”

교주님…….”

이대로 두면 날 끌어안고 펑펑 울 거 같아서 재빨리 일어선 뒤 곧바로 일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니 이제부터 네가 나설 차례다. 뭐든지 할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교주님! 제 목숨을 바쳐서라도!”

그래. 이제 좀 괜찮군. 소모품이 그 정도 패기는 있어야지. 그래야 내 신도라고 할 수 있지 않겠나.

삼 일 뒤다. 정확히 삼 일 뒤 정오에 재앙의 나이오비를 꾀어내라. 내가 알려주는 장소로 부르면 된다.”

…… 잉게 나이오비는 당분간 근신 상태입니다만…….”

핑계를 써서라도 끌어내. 친한 사람의 이름을 팔든지, 아니면 스노우 퀸이 불렀다고 하든지 해서 말이다. 그 정도 능력도 없는 건가, 너는?”

하도 답답해서 살짝 쏘아붙였다. 내가 지금 이 남자에게 느끼는 심정을 모조리 풀어내자면 이 남자는 아마 100% 자살을 하겠지만 이렇게 조금만 풀어서 들이댄다면 좋은 자극이 된다. 예상대로 남자는 바짝 군기가 든 상태로 크게 외쳤다.

아닙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끌어내겠습니다!”

그래. 바로 그런 자세야. 좋아. 완벽하게 해내도록. 난 자넬 믿고 있네.”

내가 칭찬과 함께 어깨를 두드려주자 또다시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조직의 리더는 당근과 채찍을 적절하게 쓸 줄 알아야지. 그래야 이렇게 아랫것들을 부려 먹기 쉽거든. , 회사에 숨어 있는 놈과 근처 카페에 있는 놈들에겐 이미 이야기가 끝났으니, 그럼 결과를 지켜보도록 할까. 재밌는 일이 될 테니.

거기 뭐하는 놈이냐?”

그때 누군가가 이쪽을 향해 소리쳤다. 달빛이 흐릿해 잘 보이진 않았지만, 등에 긴 무기를 메고 있는 실루엣이 보였다. 연합에서 긴 무기를 사용하는 놈이라면, 분명히 홀든 가의 검사였을 텐데. 하찮은 이름이라 잘 기억이 나질 않는군.

이글 홀든입니다. 교주님!”

옆에서 신도가 속삭였다. 그렇군. 이글이었어. 당장 제거를 할까 싶었으나 이곳은 연합 본부와 멀지 않은 장소. 따라서 싸우는 소리가 들리면 지원이 올 가능성이 크다. 쓸데없는 싸움은 피하는 게 좋지. 이 녀석이 도망갈 때까지 시간만 벌도록 할까.

뒤로 돌아서 연합 본부로 들어가라. 달이 밝지 않기 때문에 들키지 않을 거다.”

, 교주님. 하지만…….”

얼른!”

그는 수 초간 고민하다가 결국 이글이 오는 반대방향으로 줄행랑을 쳤다. 멍청한 놈. 끝까지 말을 안 듣는군. 속으로 투덜거리는 찰나 이글이 이쪽으로 뛰어왔다. 달빛에 반사된 검광이 번뜩였다. 나는 손에서 테라듀를 뽑아 검을 막았다. 허공에 불꽃이 튀겼다.

역시 능력자였나. 손에 그건…… 테라듀?!”

호오, 곧바로 알아보는군그래. 눈썰미가 좋은걸.”

이글은 다소 당황한 듯했다. 전에 싸웠던 녀석의 형인 벨져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하긴, 테라듀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벨져와는 달리 이글은 레베카의 테라듀를 본 적이 있으니, 같은 능력을 사용하는 내가 당황스럽긴 하겠군.

레베카 러쉬톤과 같은 능력이지. 물론 내가 몇 배는 더 강하지만!”

오른손에서 테라듀를 길게 뽑아 이글에게 쇄도했으나 그는 긴 검을 휘둘러 테라듀를 막았다. 하지만 예상했던바. 곧바로 왼손에 테라듀를 뭉쳐 휘둘렀다. 이글은 가까스로 몸을 틀어 피했다.

반사신경이 좋군!”

이번에는 등 뒤에서 수십 개의 테라듀를 만들어 녀석을 향해 뻗었다. 시차를 둔 수십 개의 테라듀 줄기를 이글은 침착하게 하나씩 막아냈다. 저렇게 큰 칼을 빠르게 휘두르다니. 쾌검이라는 이명이 아깝지는 않다. 그러나 뒤로 물러나면서 막았기 때문에 이글과 나 사이의 거리는 제법 벌어진 상태였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신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시간은 충분히 벌었군. 그렇다면 싸울 이유는 없지. 나는 뒤를 돌아 퇴각하기 시작했다.

기다려!”

이글이 급히 쫓아왔지만 나는 녀석을 무시한 채 마음껏 뛰었다. 테라듀를 벽에 박으면서 건물과 건물 사이를 뛰어다니자 녀석은 쫓아오지 못했다. 멀어지는 녀석을 향해 마음껏 조소를 날렸다.


 

절망하라. 허락할 테니.”


 

놈의 능력 때문에 결국 놓치고야 말았다. 테라듀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걸 보니 전에 작은형이 말했던 놈이 틀림없다. 이름이 제키엘이라고 했던가. 분명히 전신에 테라듀를 이식한 강화인간이었지.

그나저나 녀석이 갑자기 이곳에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 이유 없이 놀러 오진 않았을 터.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건 틀림없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단 말야. 방금 제키엘과 이야기를 하고 있던 녀석을 잡았어야 했는데 아쉽다. 제키엘이 방해만 하지 않았어도.

내 머리를 굴려봤자 나오는 건 없을 테니 토니에게 보고하는 편이 좋겠다. 다음 날 아침에 곧장 토니에게 가 보고를 하니 그는 심각한 얼굴로 고뇌에 잠겼다. 이럴 때는 혼자 두는 게 좋을 거로 생각해 조용히 그의 방을 빠져나가려고 하는 찰나 토니가 나를 불렀다.

이글씨.”

? ?”

나이오비씨를 주의 깊게 살펴주세요.”

나이오비는 갑자기 왜? 안타리우스의 강화인간이 나타난 것과 나이오비랑 무슨 상관일까? 도무지 알 수 없었지만, 이유를 물어본다 해서 토니가 대답해 줄 것 같지도 않아서 그냥 알겠다고 대답했다. 나이오비, 나이오비라……. 혹시나 해서 그녀에게 가 보았지만, 조용히 방에서 명상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이틀 동안 꾸준히 관찰했지만 역시나 별다른 행동은 하지 않았다. 애초에 근신처분이 내리기도 했고, 나이오비 본인도 깊은 반성을 하고 있기에 큰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토니도 틀릴 때가 있군. 슬슬 무료해진 나는 연합을 나서서 거리를 향했다. 앨리셔나 보러 갈까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어디서 많이 본 회색 머리의 군인이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틀림없이 카인 스타이거다. 절로 얼굴이 찡그려졌다.

어이! 카인!”

나는 크게 소리쳤으나 그는 듣지 못한 듯 제 갈 길을 바삐 갔다. 화가 난 나는 그를 쫓아가려고 했으나 거리에 사람이 많아 쉽지 않았다. 이리저리 어깨를 부딪치며 다시 그에게 소리쳤다.


 

이봐! 카인 스타이거!”


 

뒤를 돌아보았으나 수많은 사람만 있을 뿐. 내가 아는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누가 내 이름을 부른 것 같았는데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이런 곳에서 허비할 시간이 없다. 나는 손에 든 쪽지를 꽉 쥐었다. 오늘 아침에 한 아이가 심부름을 받았다며 내게 이 쪽지를 건네주었다. 쪽지에는 간단한 약도와 함께 정오에 이곳에 오면 레나가 있을 거라고 적혀 있었다.

누가 보냈는지는 모른다. 아마 함정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레나가 있을 가능성이 일말이라도 존재한다면 나는 가야 한다.

이사벨…….”

그녀의 이름을 되뇌며 서둘러 목적지로 향했다. 그녀의 모습을 떠올릴 때면 항상 가슴이 찢어진다. 내가 조금만 더 잘했다면, 내가 계속 그녀의 옆에 있었다면 그녀가 강화인간이 되는 고통은 겪지 않았을 텐데. 향할 곳 없는 분노와 원망이 영혼 깊은 곳에서 끓는다.

이윽고 약속 장소에 도달했다. 텅 빈 공터였는데 아무도 오지 않는 한적한 곳이었다. 아직 아무도 오지 않았는지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함정일 수도 있으니 미리 권총을 꺼내 총알을 장전했다. 그때 뒤에서 나를 부르는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카인?”

고개를 홱 돌렸다. 그곳에는 짧은 푸른색 머리를 한 여성……이 있을 줄 알았는데 긴 금발의 여성이 있을 뿐이었다. 숲을 걸어 다니는 도도한 요정 같은 자태를 지닌 드니스였다. 그러면 그렇지. 정말로 레나가 나올 리가.

드니스인가. 당신이 나를 불렀소?”

무슨 말이죠? 당신이 저를 불렀잖아요.”

나는 드니스에게 연락을 한 적이 없는데. 누군가 내 이름을 사칭해서 드니스를 불러냈단 말인가? 아무래도 누군가 꾸민 함정이 틀림없다. 나는 권총을 양손에 들고 주변을 살폈다.

그건 내가 아니오. 우린 함정에 빠진 것 같군.”

그렇게 둘러보지 않아도 괜찮아요. 주변엔 아무도 없으니.”

벌써 드니스가 식물을 이용해 주변 탐색을 마친 모양이다. 그녀는 식물을 몸에 거둬들이더니 한 마디 덧붙였다.

, 겁 많은 고양이 한 마리가 저쪽 바위 뒤에 숨어 있긴 하군요.”

그런 건 신경 쓸 필요 없잖소.”

나는 그녀를 믿고 총을 집어넣었다. 드니스는 전적으로 믿을 만한 동료이니까.

그나저나 오랜만이네요.”

그렇군. 요새 통 만나질 못했으니.”

드니스가 내게 말을 건네며 천천히 다가왔다. 요정을 연상케 하는 우아한 걸음걸이는 언제봐도 아름답다. 그녀이기에 가능한 동작이다. 정말이지 영화에 종종 등장하는 요정족의 표본 같은 존재다. 본인은 이런 평가를 썩 좋아하는 것 같진 않지만.

이곳에는 누굴 만나러 온 거죠?”

그녀의 푸른색 눈동자가 나를 관통했다. 레나를 만나러 왔다고 하면 그녀는 또다시 상처를 입겠지. 하지만 이 맑은 눈동자 앞에서 어찌 거짓을 고할 수 있겠는가. 나를 믿어주는 동료의 신뢰를 저버릴 수는 없다.

이사벨……. 레나를 만나러 왔지. 누군가 이곳에 오면 만날 수 있다고 했는데, 거짓이었나 보오.”

역시 그 말을 들은 드니스의 눈빛이 살짝 흐려졌다. 하지만 이제 익숙하다는 듯 곧 표정을 가다듬었다.

이상하군요. 그보다 카인. 아직도 레나를 잊지 못하는 건가요?”

굉장히 직설적이군. 그녀의 성격이 원래 그러니 어쩔 수 없지만. 그나저나 지겹지도 않은 건가? 지금까지 드니스가 내게 이 질문을 몇 번이나 했는데. 물론 대답은 언제나 같다.

미안하네.”

나한테 미안해할 건 없어요. 나는 심장의 외침에 따라 행동하고, 당신은 레나를 잊지 못하는 것일 뿐. 서로 감정에 따라 행동하는 거니까 사과는 필요 없어요.”

언제나 같은 대답을 들어도 한결같이 내게 애정을 보내주는 드니스에게 언제나 미안하지만, 또 고맙기도 하다. 만약 내가 이사벨을 만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드니스와……. 아니, 그만두자. 쓸데없는 생각은 내 영혼을 더 병들게 할 뿐이다.

난 당신에게 내 마음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족해요. 심장의 외침을 애써 외면하며 표현조차 하지 않는 머저리보단 훨씬 나으니까요. 항상 뒤에 숨어서 지켜보기만 하는 한심한 여자는, 그 무엇도 얻을 수 없죠.”

나이오비를 말하는 건가. 그녀에게도 항상 미안함과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나처럼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린 경험이 있는 가련한 여인이다.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상처를 조금이나마 치료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내 가슴에 그녀가 들어올 자리는 없다.

그러니까 혹시, 당신의 마음속에서 레나가 조금이라도 지워진다면…….”

거기까지 말한 드니스가 말을 끊었다. 급히 고개를 홱 돌리기에 덩달아 그 방향으로 보았더니 저 멀리서 사람의 실루엣이 보였다. 그런데 그 실루엣이 어디서 많이 보던 모습이었다. 흡사…….

레나?”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카인! 기다려요!” 뒤에서 드니스의 외침이 들렸지만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이쪽에서 사람이 다가오자 실루엣은 뒤로 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강각이라는 이명답게 나와 그녀 사이의 거리는 계속 벌어졌다. 나는 이를 악물고 계속 달렸다.

한계까지 가속된 몸이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무리하는 심장은 멈추라고 경고를 보내고 있었지만 그럴 순 없었다. 이제 조금만, 조금만 더 가면 그녀를 잡을 수 있는데. 설령 내 몸이 부서진다 해도, 지금은 절대로 멈출 수 없었다.

이사벨. 내 하나뿐인 사랑. 나에게 행복이 무엇인지 가르쳐 준 여인. 그리고 나 때문에 불행을 알게 된 비운의 여자. 그녀를 위해서라면 내 몸 하나 부서지는 게 무슨 대수랴. 내 영혼의 마지막 한 조각까지 내 모든 것은 온전히 그녀를 위해 존재한다. 오직 그녀를 만나서 그녀를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서!

그러나 하늘은 나의 편이 아니었다. 주변에 서서히 안개가 끼고 있었다. 대낮에 안개라니, 정말 보기 힘든 광경이 하필 지금 일어나고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레나의 모습은 점차 흐릿해지고 있었고 나는 더욱 몸을 혹사했다. 하지만 결국, 그녀의 모습은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었다. 다리에 힘이 절로 빠졌다. 그 자리에 넘어지려는 찰나, 누군가 내 몸을 부축해주었다. 드니스가 나를 따라와 준 모양이다.

미안하군, 드니…….”

나를 받쳐준 손이 그녀의 고운 손이 아니라 투박한 금속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강렬한 통증이 내 복부를 꿰뚫었다. 전장에서 단련된 본능이 몸을 틀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으면 심장을 관통당해 즉사했으리라. 재빨리 바닥을 구른 뒤 권총을 꺼내 겨눴으나 적은 가볍게 권총을 쳐낸 뒤 수십 개의 날카로운 금속으로 나를 찔렸다. 입에 핏물이 고였다.

인도하소서!”

검은 옷을 입은 자가 손을 들어내 심장을 찌르려고 했으나 옆에서 날아온 꽃잎이 팔의 궤도를 빗나가게 했다. 연이어 커다란 꽃잎들이 날아오자 온몸에 금속을 두르더니 재빨리 뒤로 구르며 사라졌다. 쓰러진 내 눈에 당황한 드니스의 얼굴이 들어왔다.

카인! 카인! 괜찮아요?”

무어라 말을 하려 했으나 나오는 건 선혈뿐이었다. 말을 하면 할수록 입에서 피만 솟구쳤다.

말하지 마세요!”

드니스는 자신의 옷자락을 찢어 찔린 부위를 묶었다. 하지만 피가 흘러나오는 부위가 한둘이 아니라 전부 지혈을 하지는 못했다. 서서히 고통이 줄어들며 시야가 점차 흐릿해지고 있었다.

드니스…….”

겨우 입안에 있던 피를 다 뱉고 말을 할 수 있었다. 드니스는 그러지 말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으나 나는 희미하게 웃었다. 눈을 뜨고 있는 것조차 힘이 들어 눈을 감았다. 카페 점원 옷을 입고 긴 머리를 찰랑거리던 이사벨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나이오비도.

 


레나와, 나이오비를 부탁하네.”


 

그 목소리와 함께 내 머릿속에서 무언가 끊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천천히 드니스에게 다가갔다. 내 발소리를 들은 드니스가 내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한줄기 흐르고 있었다. 가증스러운 것.

왜 이렇게 된 거지, 드니스?”

레나를 쫓아가던 카인을 누군가 습격했어. 내가 그를 따라잡았을 때에는 이미 부상이 심각한 정도였고. 그러니 빨리 의사를, 아니 누구라도 좋아. 빨리 사람을 불러줘. 지금 한시가 급해, 나이오비!”

그 더러운 입으로 내 이름을 부르지 마. 감히, 감히 카인도 지키지 못한 네가 어떻게.

나는 그런 걸 물은 게 아니야.”

무슨 말이야?”

그렇게 앞에 나서서 카인에게 마음을 보여주던 네가, 뒤에 있는 나를 비웃는 네가. 그렇게 큰소리를 치던 네가 왜 카인을 지키지 못했느냐는 말이야.”

나도 노력했어! 하지만!”

변명하지 마!”

순식간에 주변에 불이 붙었다. 냉랭한 안개가 내 심장에 스며들었고,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냉정해졌다. 냉정함이 만들어 낸 차가운 분노는 모조리 드니스를 향했다. 언제나 나를 무시하고, 심장의 외침이라며 카인에게 사랑을 표하고, 그러면서도 항상 당당했던 그녀. 그러나 결국 카인을 지켜내지 못한 망할 년. 썩을 년. 가증스러운 년!

잠깐, 이 안개는 설마!”

드니스가 카인을 바닥에 놓고 내게 달려들었다. 그래, 네가 본색을 드러냈구나. 덕분에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내 분노를 온전히 내게 전해줄 수 있게 되었어. 고맙구나. 드니스.

차가운 분노는 영겁을 태우는 겁화가 되어 드니스와 주변을 불태웠다. 꽃으로 몸을 감싸 보호하긴 했지만 얼마 가지 못할 터. 전력을 다한 내 불꽃은 한낱 식물로 막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특히 지금의 나는 온몸에서 힘이 넘치는 상태다. 감히 사람의 발에 밟혀 사라질 식물 주제에 내게 대들다니, 한참 멀었다.

결국, 꽃잎이 떨어짐과 동시에 드니스는 비명을 질렀고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가죽과 살이 타들어가는 소리가 내 귀에 생생하게 울렸다. 직접 다듬질을 할 쇠판과 쇠방망이가 없는 것이 아쉽지만 그래도 어떠한가. 고통 받는 죄인과 희열을 느끼는 심판관이 있는데 이 정도면 훌륭한 초열지옥이 아닌가. 나락에 떨어진 죄인에게 실로 어울리는 장소다.

숲이 불타고 대지가 울부짖는다. 녹음을 자랑하던 초목도, 산천을 뛰놀던 토끼도,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도 이곳에서는 모두 한 줌의 재가 된다. 누군가를 사랑했던 마음도, 혼자서 앓고 있던 짝사랑도 예외는 아니다. 거기에 우열 따윈 없다.

태워라. 불태워라. 불살라라. 누구에게나 공평한 불이여. 세상을 태워버려라. 사랑했던 사람도, 미워했던 사람도. 나를 적대했던 사람도, 나와 함께 했던 사람도. 나를 아껴주는 사람도, 내가 사랑했던 저 아이도.

아이?

나이오비 언니!”

엘리?!”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그 목소리에 겨우 상념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지금 내 상념이 중요한 게 아니다. 엘리가 이렇게나 위험한 곳에 있다는 게 더 중요하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엘리는 계속해서 내 쪽으로 다가왔다. 어디서 꺼내왔는지 커다란 폭죽을 타고 있었다. 순식간에 다가온 엘리는 그대로 내 품에 안겼다.

안 돼, 엘리!”

나를 제외한 주변의 모든 것을 불사르는 불꽃은 엘리의 옷에도 붙었고 순식간에 타오르기 시작했다. 참기 어려울 정도로 뜨거울 텐데도 불구하고 엘리는 내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저 내 가슴에 안겨 울고 있을 뿐이었다.

지금 언니는 엘리가 보아 온 언니 중에서 가장 슬퍼해. 언니가 슬프면 엘리도 슬퍼. 그러니까 나이오비 언니. 슬퍼하지 않으면 안 돼? ?”

커다란 눈망울에서 연신 눈물을 흘리며 나를 올려다보는 엘리의 옷자락이 불에 그슬리자 그제야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곧바로 손에서 불을 멈추고 엘리를 꽉 끌어안고 엘리의 옷에 붙어 있던 불꽃들은 모조리 없애버렸다.

미안해.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엘리야. 미안해.”

내가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하고 원망스러웠다. 에밀리아를 잃어버리고도 아직 정신을 못 차렸단 말인가. 똑같은 방법으로 엘리까지 잃어버릴 셈이었나. 감히 누가 죄인이고 누가 심판관인가. 초열지옥에 떨어질 죄인은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었다.

중간에 멈춰서 다행이네.”

고개를 들자 온몸에 탄 자국이 선명한 드니스가 있었다. 그녀에게도 정말 몹쓸 짓을 했구나. 하지만, 미안한 마음보다는 살아 있어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먼저 들었다.

포트레너드 사건처럼 크게 되진 않을 것 같아. 네 친구들도 금방 와 줬고.”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새 연합의 능력자들이 도착해 불을 끄고 있었다. 루이스와 토마스가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고, 휴톤과 도일은 주변에 불이 붙을만한 물건을 제거하여 불이 번지는 걸 막았다. 저 멀리 트리비아가 회사의 물 능력자 둘을 안고 날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드니스의 말처럼 크게 번질 염려는 없어 보였다.

응급조치는 끝냈다. 환자의 생명에 지장은 없을 것 같군.”

어느새 다가온 닥터 까미유가 내게 카인의 상태를 말해주었다. , 다행이구나. 정말 다행이야. 또다시 재앙이 될 뻔한 나는 겨우 구원을 받았다. 나는 엘리를 꼭 품에 안으며 서서히 쓰러졌다. 곧 의식이 끊겼다.


 

결과적으로 네 공이 컸네. 이글. 고마워.”

, 나도 토니가 가르쳐주지 않았으면 몰랐을 테니까.”

며칠 뒤, 퇴원한 나는 이글에게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다. 누군가가 서로의 필적을 위조해 나와 드니스, 카인을 불러내었고 그 자리에 능력자를 증폭시키는 안개를 깔아 다시 한 번 재앙을 일으킬 셈이었다는 사실을. 드니스는 나를 보면 도발을 할 것이고, 카인은 레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으면 거기에 정신이 팔려 주변을 둘러보지 못할 것이며, 그 사이에 카인을 죽이면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인 내가 폭주할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계획은 잘 맞아떨어졌으나, 그전에 토니 리켓이 이글에게 나를 잘 지켜보라는 말을 했었고, 카인을 보고 쫓아가던 이글이 허탕을 치고 돌아오는 길에 그쪽으로 가는 나를 발견한 뒤 이를 수상하게 여겨 연합에 연락해 능력자들을 불러온 것이었다. 그리고 멀리서 불이 보이자마자 회사에 요청해 물 능력자들을 부르고 혹시 모를 부상자를 대비해 까미유에게도 연락을 했다고.

또다시 재앙을 만들 뻔한 내가 깨어났을 때, 동료들이 가장 먼저 한 행동은 질책이 아니라 위로였다. 나는 그동안 참아왔던 모든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이제 두 번 다시는 재앙을 가져오지 않으리라 맹세했다.

, 카인에게는 가지 않아도 괜찮아?”

지금은 그를 볼 면목이 없어.”

이글의 말처럼 지금 당장에라도 그를 보고 싶다. 그의 얼굴을 보고 대화를 나누고 싶다. 다시 한 번 파헤쳐진 그의 상처를 아물게 해 주고 싶다. 그러나 지금은 그를 볼 수 없다. 그와의 만남은 좀 더 뒤로 미뤄야 한다.

언젠가 내가 타라처럼 내 불을 완벽하게 다룰 수 있게 된다면, 그를 찾아갈 거야.”

그리고 그의 앞에서 당당히 내 불꽃을 보여주리라. 다시는 그가 나를 재앙이라고 부르지 못하게.

, 좋은데?”

이글은 잘해보라며 어깨를 두드리고 갔다. 연합에서 제일 망나니 같다는 사람이 저 정도라니, 역시 여기는 너무 착해 빠진 사람들뿐이다. 물론 전에는 오토와 부처같은 쓰레기들도 있었지만, 적어도 지금 연합에 있는 능력자는 다들 좋은 사람이다.

슬슬 약속시각이 되었으니 근처에 있는 술집으로 향했다. 며칠 전에 나와 드니스가 다툼을 벌였던 곳이다. 술집에 들어가자 주인장이 내게 원망의 눈초리를 보냈으나 나는 화를 내지 않고 대신 고개를 숙였다. 내 실수 탓에 벌을 받는 것이니, 무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여야겠지.

구석으로 가자 정갈한 흰색 도복을 입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 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지 차를 홀짝이던 그는 나를 보자 뜬금없는 말을 내뱉었다.

기의 흐름이 좋지 않군.”

다른 사람이라면 웬 아시아 사람이 이상한 종교 권유를 하는가 했겠지만, 그는 기를 다룰 줄 아는 능력자, 그랑플람 재단의 아시아 지부 스카우터 티엔 정이다. 그가 하는 말이니 틀림없겠지.

역시 그런가. 그러니 당신이 날 가르쳐줬으면 좋겠어.”

토니 리켓이 내게 타라와 티엔 정에게 가르침을 받으면 큰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타라에게는 개인적으로 말을 해 두었고 문제는 티엔 정이었는데, 토니 리켓이 그랑플람 제단에 연락을 취해두었다. 다행히 그쪽에서도 연합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었는지 금방 수락했다. 그래서 오늘부터 내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그에게 배우기로 한 것이다.

상관없다만, 내 가르침은 엄격하다. 따라올 수 있겠나?”

물론이야. 나는 반드시 내 능력을 안정시켜야 할 이유가 있으니까.”

머릿속에 엘리가 웃는 얼굴이 떠올랐다. 동시에 에밀리아의 미소가 겹쳐 보였다. 두 번 다시 잃지 않으리라. 그렇게 맹세를 하고 다짐을 했지만 정작 노력은 하지 않았다. 노력 없이 무어가 되겠는가.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뼈를 깎는 고통을 겪어서라도 반드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는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7명의 아들과 7명의 딸을 두었지만 지나치게 자식 자랑을 하다가 신의 분노를 사게 되어 자식을 모조리 잃게 된다. 14명의 자식을 잃은 그녀는 밤낮을 울며 탄식하다가 결국은 돌이 되었다고 한다.

나도 그녀처럼 이미 한 명의 자식을 잃었다. 그녀와 같은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두 번은 없다. 이제는 결코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다시는 눈물을 흘릴 일이 없도록.

별처럼 빛나는 내 아이의 환한 미소를, 언제까지고 지켜낼 것이다.

 

 



2015. 03. 15.

사이퍼즈 팬픽 공모전에 냈다가 떨어진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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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h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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