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님. 보고서 완성했습니다.”

신입사원이 손에 두툼한 보고서를 들고 부장의 책상으로 다가왔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모습이었다. 부장은 잠시 그를 훑어보더니 이내 보고서를 잡고는 빠르게 넘기기 시작했다. 제대로 보는 게 맞는지 의심스러웠으나 주위에 있는 누구도 책을 잡지 못했다. 저렇게 봐도 그 누구보다 정확하게 확인하기 때문이다.

.”

. 부장님.”

릭은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깜짝 놀라며 대답했다. 설마, 또 뭔가 잘못된걸까. 벌써 3번째 수정한 보고서였다. 이제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이번엔 제발, 이번엔 제발.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이렇게 표가 난잡하면 가독성이 떨어지지 않나. 그리고 옆에 그래프는 이게 뭔가? 이런 도표에선 막대형 그래프보단 원형 그래프가 훨씬 좋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닐테고. 여기 34페이지에 이 자료는 확실하지 않으니 빼고 내가 보내준 6월 조사 결과를 써라고 저번에도 말했던 것 같은데 그건 어디 갔는지 모르겠군.”

……죄송합니다.”

간절히 바라면 우주가 이루어 준다고 누가 말했는데, 릭에겐 전혀 해당되지 않는 말인 듯했다. 릭의 어깨가 절로 내려갔다.

고칠 부분들 다 적어 놓았으니 이대로 수정하도록. 쓸데없이 다른 거 건드리지 말고.”

어느새 지적사항들을 다 적어놓은 모양이다. 정말 자기중심적 성격에 재수 없지만 능력 하나는 확실한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 나이에 부장을 하고 있지만 아무도 무시하지 못하는 것이다.

. 홀든 부장님.”

“‘홀든부장님?”

, 실례했습니다. 벨져 부장님.”

부장은 이름을 대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굴지의 대기업 홀든 가문의 차남이었다. 그러나 완벽주의자인 벨져에겐 가문조차도 걸림돌에 불과했다. 그는 자신의 능력으로 완벽을 증명받길 원하는 사람이었기에 성으로 불리는 걸 매우 싫어했다. 그래서 평소에도 다른 사원들에게 벨져 부장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보고서가 지적받은 데다 말실수까지 한 릭은 풀이 죽어 자신의 자리에 돌아왔다. 주변에 있던 사원들은 그의 눈치를 보며 하나둘씩 퇴근하기 시작했다. 오늘도 릭과 벨져 둘만 야근을 하는 모양이었다.

릭이 투덜거리며 키보드 자판을 두들기고 있는데 누군가 그의 등을 건드렸다. 순간 짜증이 솟구쳐 홱 돌아보다가 딱딱한 무언가에 머리를 부딪쳤다. 머리를 문지르며 자세히 보니 캔커피였다.

회사 내에 있는 자판기에는 싸구려 커피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다.”

벨져가 손에 든 캔커피를 내밀며 말했다. 릭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캔커피를 받아 들었다.

우리 부서에 멍청이들 밖에 없어서 그나마 일을 맡길 사람이 자네밖에 없는 걸 이해해줬으면 좋겠군.”

그래서 저만 매일 남기신 겁니까?”

릭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사실 벨져가 특히 자신에게만 잔소리를 많이 한다는 걸 릭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저 냉정한 부장의 입에서 직접 저런 말을 들으니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 그래도 날 따라오려면 아직 멀었지만.”

, . 여부가 있겠나. 다 이해 하오……. 아차.”

무의식적으로 편하게 말을 했다가 다 뱉고 나서야 눈치를 챈 릭이 벨져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 벨져는 피식 웃을 뿐이었다.

둘만 있을 땐 괜찮다.”

그것 참 다행이오.”

릭도 따라 웃었다.

그렇다고 일 안 해도 되는 건 아니다.”

. 너무 재촉하지 마시오. 알아서 다 할테니.”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잠시 보다가 이내 서로의 자리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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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h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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