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

고요히 흐르는 정적 속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두 번. 방문해도 되는지 묻는 정중한 소리다. 노크에 대한 대답이 한참 동안 없었지만, 방문자는 서두르지 않았다. 다시 노크하지도 않고 목소리를 내지도 않았다. 그저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예의가 몸에 밴 솜씨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소리가 들리지 않자 이상함을 느낀 그는 손잡이를 돌렸다. 문을 열고 나타난 방문자는 긴 은발을 휘날리며 집 안으로 들어왔다. 뭇 여성보다 아름답지만, 한편으로는 남성스러운 미가 물씬 풍기는 미남이었다. 그의 얼굴을 본 여자들은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였고 남자들은 타오르는 질투심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외모를 자랑하지도, 숨기지도 않았다. 벨져 홀든에게 있어 아름다운 외모는 지극히 당연하였다.

벨져는 주변을 두리번거렸으나 저택에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잠깐 고민하던 그는 선 채로 눈을 감았다. 모든 신경을 집중한 귀에서 흐릿한 소리를 잡았다. 다시 눈을 떤 벨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걸음을 옮기더니 어느 방에 들어가 거기 있는 벽장문을 열었다.

낡은 벽장 안에는 한 소녀가 주저앉아 있었다. 탐스러운 갈색 머리를 가지런히 묶은 그녀는 어디에서나 빛나는 화려한 용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 어떤 남자라도 그녀가 지나간다면 고개를 돌리지 않을 수 없으리라. 그러나 표정에는 두려움이 가득했고 손과 발은 불안함으로 떨리고 있었다. 그것조차도 아름다웠으나, 벨져는 위태로운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했다. 리사 스트라우스는 그런 소녀였다.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가.”

벨져가 입을 열었다. 나긋하면서도 위엄이 서려 있는 목소리였다. 벨져 홀든이 아니라면 절대로 낼 수 없는 목소리에 리사는 움찔거렸다. 무어라 대답을 하려는 순간, 창밖에서 강렬한 빛이 번쩍였다. 벨져의 고개가 절로 돌아갔다.

그러고 보니 오늘 저녁에 온다고 했던가. 벨져는 먹구름으로 뒤덮인 하늘을 보며 부하인 바이런 헌터가 멀리서 커다란 태풍이 오고 있다는 말을 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다시 고개를 원래대로 돌리자, 두 귀를 꽉 막고 온몸을 떨고 있는 리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리사 스트라우스?”

싫어…….”

리사의 입에서 얇은 비명이 새어 나왔다. 무얼까. 무엇이 또 리사를 괴롭히고 있는 것일까. 벨져가 재차 입을 열려는 순간, 빛보다 늦게 도착한 소리가 대기를 강타했다. 고요한 저택을 가득 채우는 무시무시한 소리였다.

싫어!”

동시에 리사의 비명이 방을 메웠다. 천둥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작은 소리였지만, 곁에 서 있는 벨져에겐 전혀 그렇지 않았다. 리사의 입에서 흘러나온 단어는 순식간에 증폭되었고 강한 음파가 되어 벨져를 덮쳤다. 하지만 벨져는 섬광이라는 이명에 어울리는 빠른 동작으로 검을 뽑아 음파를 막았다. 그러나 완전히 막지는 못했는지 옆구리가 조금 베였다.

붉게 물드는 벨져의 옆구리를 본 리사의 동공이 커졌다. 정신이 불안정한 그녀는 자신의 능력을 완전히 통제하지 못한다. 지금처럼 한 가지 감정에 극도로 시달릴 때, 소리는 리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폭주한다. 리사 본인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나, 막상 그 결과물을 눈앞에 두자 더욱 혼란스러울 따름이었다.

, ……. …….”

칼을 다시 집어넣은 벨져가 리사에게 다가왔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떨리는 그녀의 손을 살짝 맞잡았다. 벨져의 표정은 처음 그대로였다.

살짝 스친 정도이니 괜찮다.”

리사의 떨림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벨져는 무릎을 굽혀 앉아 있는 리사와 눈높이를 맞췄다. 조금은 안정을 되찾았으나 여전히 공포가 가득한 눈동자가 있었다.

번개가 무서운가?”

리사가 다시 움찔거렸다. 벨져는 마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 소리가…….”

그렇군.”

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로 몸을 움직였다. 조심스레 몸을 굽히더니 리사의 옆에 앉은 것이다. 리사는 잠깐 당황했으나 손에서 전해지는 온기에 마음을 진정시켰다. 정자세로 앉은 벨져는 앞에 있는 창문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이 벨져가 옆에 있으니, 두려워할 필요 없다.”

그 말을 들은 리사는 멍하니 있다가 이내 웃었다. 오늘 처음으로 지은 미소였다. 그녀는 머리를 눕혀 벨져의 어깨에 기대었다. 그리고 눈을 감고 조용히 읊조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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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ah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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